[스포주의]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영화에 있어서도 주제는 소재의 무더기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즉, 감독이 전하고자하는 ‘메세지’는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등장인물, 사건의 뒤에 가려져 있어야 한다. 잘 창조된 캐릭터와 흥미를 끄는 서사를 통하여 감독의 메세지는 관객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며, 이 메세지는 영화가 끝난후에야 비로소 관객의 의식의 표면위로 뚜렷이 올라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 강철비2는 이러한 좋은 영화의 기본 요건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감독의 대변인이라도 되는냥 시종일관 감독의 메세지를 직접적으로 투박하게 관객에게 주입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영화의 과반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설명되는 복잡한 역사적 정보의 설명으로 채워져 있다. 마치 수능 역사 강의 동영상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 영화의 등장인물과 서사의 진행은 모두 실제의 현실을 모티브로 한다. 즉, 등장인물은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라는 세명의 현실세계속 지도자를 모델로 하고 있으며, 스토리는 작년 베트남에서 개최된 북미 협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살짝 변주한 것이다. 현실을 살짝 비틀었으므로 완전한 픽션보다 현실감이 넘칠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이 영화,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오히려 영화를 보는 내내 왠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원본이 되는 현실들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에 기인한다. 모델이 된 세명의 최고 지도자들은 현재도 여전히 재임중이며, 북미 문제도 여전히 진행중인 사안이다. 따라서 관객은 영화를 보며 진짜 현실과 영화속 현실을 무의식중에 계속 비교하게 되고, 이는 영화에의 몰입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아이러니하게 현실을 기반으로 했음에도 영화가 가짜라는 생생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나마 후반부의 잠수함 전투씬이 전반부의 지루함을 약간이나마 풀어주기는 하지만, 이것은 전반부가 워낙 지루했던 것의 반작용에 불과하다. 잠수함을 다룬 수작으로 평가받는 ‘붉은 10월’은 물론, 국내 최초로 잠수함전을 다룬 영화인 ‘유령’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많이 엿보인다. 세트 디자인이 해저의 밀폐된 공간이라는 잠수함의 특성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여 공간의 폐쇄로 오는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연출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작비 탓인지 백두호를 제외한 나머지 잠수함 내부의 상황묘사는 모두 생략되어 전투의 긴박함도 떨어진다.
그 밖에 정우성의 일장 연설을 듣고 감화(?)되어 마음을 고쳐 먹는 북한 지도자의 모습, 불필요한 개그를 남발하는 미국 대통령의 모습, 쿠키영상에 등장하는 대국민 담화등이 감독의 ‘거창한 메세지’를 억지스럽게 전달하기 위해 민망한 모습으로 끼워져 있다.
이 영화의 단한가지 장점은 배우들의 연기력 하나 만큼은 준수하다는 점이다. 흔히 구색맞추기로 연기력이 떨어지는 외국 배우들을 섭외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 영화속의 외국배우들은 모두 연기에 문제가 없다. 이렇게 훌륭한 배우들을 데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내는것도 감독의 능력이라면 능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