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평론
남녀간의 사랑이란 사건(행위나 감정이 아닌)에는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욕구”, “성욕”, “지배욕”이 수반된다. 이중 지배욕은 좋지 않은 것으로 권력욕의 일종이다. 사랑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이 지배욕에서 비롯되는데, 당사자들은 아무래도 “사랑”이란 성스러운 통념에 사로잡혀 이같은 지배욕을 스스로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에릭 로메르는 그의 영화에서 사랑의 욕구중에서도 이 지배욕을 주요하게 자주 다루는데, 본 영화 역시 그러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인 남자는 권력 욕구의 충족으로서의 사랑을 하고 있다. 매력적인 금발 아가씨 실비와의 연애는 왠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자기합리화적 망상을 늘어놓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우연히 만난 빵집 소녀는 실비로 부터 오는 권력욕의 좌절감에 대한 보상심리의 대상일 뿐이다. 그녀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부모님의 빵집에서 일하고 있는 촌스럽고 미숙한 여성이다. 실비에 비해 너무나 격(?)이 낮은 그녀에게 들이댄다는 것이 자존심 상할 일이겠지만, 법대생이라는 남자와 빵집소녀간의 신분차이는 남자로 하여금 잃어버린 권력욕을 다시금 채워주는 동기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러니 한 점은 사실 빵집 소녀는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남자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와 표정은 관심과 애정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럼에도 남자는 또 다시 자기합리화적 망상을 늘어놓으며 소녀가 자신을 좋아해서 난감하다는 착각을 스스로 만들어 낸다.
이 영화는 에릭 로메르의 도덕 연작 시리즈중 하나인데, 결과적으로 두가지 도덕이 다루어지게 된다. 하나는 남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인데 위와 같이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지배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권력 행위의 과정속에 한 여자를 놓아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남자가 분명히 의식하는 것으로서 빵집 소녀를 바람 맞힌 행위다.
남자는 이 같은 도덕적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까? 전자는 빵집소녀가 마치 분수도 모르고 자신을 꼬신 것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 정당화하고, 후자는 사랑하는 실비를 앞에두고 빵집 소녀를 만난다면 소녀를 속이는 것이라는 자기합리화를 통해 해결한다. 그러나 어짜피 소녀는 남자에게 관심도 없었다. 애당초 여기에 도덕적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저 모든 문제는 남자의 머리속에서만 이루어 진것이라는 아이러니함만 있을뿐이다.
마지막에서 감독은 왜 남자와 실비가 결혼한 것으로 연출했을까? 남자가 실비에게 차이는 스토리가 관객에게는 좀더 친숙하고 자연스럽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남자가 차이게 된다면 그의 망상은 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영화는 마치 흔해 빠진 교훈을 전달하는 도덕 교과서와 비슷한 것이 된다. 결혼했기에 남자는 자신이 승자라 또다른 망상을 하지 않을까? 그의 망상을 유지시킴으로서 여운을 남기는게 더 좋은 선택인 것이다.
2.좋은 장면 몇가지
영상 형식면에서 좋은 장면 세가지를 추려 소개한다.
첫번째 장면은, 실비와 남자 두명이 우연히 조우하는 장면으로 패닝샷을 사용하여 역동적이고 우연적인 느낌을 잘 살리고 있다.
두번째 장면은, 역시 실비와 커피숍에서의 남자 두명이 조우하는 장면으로, 카메라를 선형으로 이동시켜 실비를 추적하고 있다. 여기서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소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느낌이 나게 된다. 참고로 이같은 선형적 카메라 워킹은 홍상수 감독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세번째 장면은, 점프컷을 사용하여 인물을 점진적으로 노출하는 기법이 사용되었으며, 인위적인 줌인도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줌인 기법도 역시 홍상수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