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정부가 그간의 “위드코로나” 전략에서 잠시 벗어나 방역패스를 핵심 수단으로하는 방역 강화정책을 내놓았다. 이번 새로운 정책을 중심으로 지금까지의 정부의 방역 정책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두루 살펴보도록 하겠다.
1.과학적 예측의 부재
코로나 판데믹도 이제 어언 2년이 넘어가고 있다. 이쯤이면 이제 정부도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사태의 추이를 어느정도는 정확성있게 예측해야할 분석능력을 가질때가 되었다. 하지만 이번 정책을 보면 현재 정부는 이러한 예측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저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추어 국민들 눈치를 봐가며 반응을 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핵심 문제는 “의료시설의 포화 정도”이다. 즉, 코로나 사태에 있어서는 중환자 수가 폭증하지 않게 조절하여 의료시스템이 마비되는 최악의 상황을 막는것이 제 1 목표가 된다. 따라서 사실 확진자수 자체가 늘어나는 것은 일단 크게 문제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처음 “위드 코로나” 전략을 시작할때, 이미 확진자 증가는 당연히 예견된 일이었다. 이에 따라 중환자 숫자도 늘어날것을 쉽게 예측할수 있었다. 여러 언론 보도를 보면 정부는 당초 확진자 수가 1만명이 넘어가는 것도 감수할 전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 2천명 수준이었던 확진자수가 5배가 된다면, 100~200명 수준이었던 중환자수도 자연스럽게 1000명을 넘을수 있다는 예측은 단순한 산술 계산으로도 쉽게 할수가 있다. 요컨대 현재의 중환자수 700명은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도 뻔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지금 이러한 뻔한 상황을 전혀 예측을 못했다는듯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치 미래의 중환자수 추이와 응급실 수용력을 파악 조차 못하고 위드 코로나 정책을 겁도 없이 시작한것 같은 모습이다. 지난 2년의 경험을 통해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배운것인가?
2.방역패스 정책의 철학적 문제
방역패스와 관련해서는 과학적 문제와 철학적 문제가 존재한다. 허나 국민 대부분은 과학적 문제만 간신히 그 존재를 인식하고 있을뿐 철학적 문제에 대해서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듯 하다. 이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먼저 과학적 문제부터 간단히 살펴보자. 과학적으로 현재의 코로나 백신이 안전하며, 대부분의 상황에서 백신을 맞는것이 개인의 이익이 되는것은 분명하다. 만약 특별한 기저질환이 없음에도 백신의 부작용이 두려워 백신을 피하는 자가 있다면, 교통사고가 무서워 차를 타지 않고 도보로만 다니는 사람만큼이나 비합리적이라고 볼수 있을것이다.
정부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국민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철학적 문제이다. 방역패스 정책에는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의 어디까지 미칠수 있는지”, 즉, “국가 권력의 한계”라는 철학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침습적 행위인 백신 접종은 단순히 마스크 의무화와는 차원이 다르게 국가가 개인의 삶에 침투해 들어오는 사건이다. 어떤 약물을 신체내에 강제로 투입하는 것은 그 침해정도가 매우 심하기 때문이다.
물론 무조건 백신 접종을 강제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침해의 정도와 공공의 이익을 비교 교량해서 결정해야 할 문제인데, 세상 만사가 그렇듯이 여기에는 딱 정해진 답은 없다. 다만, 두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렇게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토론과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개인권의 침해 정도가 매우 심한 백신접종과 같은 경우에는 정말로 불가피한 수준에 이르렀을때 신중히 의무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현재 정부는 위 두가지 사항을 고려조차하지 않고 있으며, 솔직히 위와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는 의식 조차 없어보인다. 그저 지극히 행정 편의주의적인 마인드로 방역패스도 여러 방역 수단중 하나로만 보고 있는듯 하다.
방역패스 의무화 장소로 지정된 학원, 독서실의 경우에는 그동안 확진자수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은 지역이다. 이들을 넣은것은 불편함을 야기하여 청소년들의 백신접종을 사실상 강제로 유도하기 위한 얇팍한 수작에 불과하다. 참으로 치졸한 일이다.
혹자는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의 예를 들어, 방역패스 정책을 이들 국가도 시행하고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이들과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위 국가들은 하루에도 수만명씩 환자가 쏟아져 나오는 형국이니, 개인의 기본권을 불가피하게 침해할수 밖에 없는 기본적 여건은 조성되어 있다고 볼수 있다. 나는 우리는 아직 그런 상황 까지는 아니라고 본다. 다른 수단이 아직 남아 있는데, 불필요하게 최후의 수단을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3.불필요한 행정력 낭비
중환자수가 크게 늘어나니 정부가 이제서야 재택 치료 정책으로 전환하는 모양이다. 사실 이는 다소 때늦은 감이 있는데, 예전부터 경증환자는 굳이 치료소 입소를 할 필요없이 재택 치료를 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다. 어짜피 환자의 증가는 오래전 부터 예상 가능했던 일이고, 코로나와의 전쟁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에 가깝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의료 인프라를 낭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밖에도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가 많이 보이는데, 형식적이고 비과학적인 방역 조치(이를테면 바닥에 소독약을 분사하는 식의 방역활동), 백신수송에 군부대를 동원하는 등의 보여주기식 쇼 등이 그러하다.
4.제한만 있고 처벌은 없다.
원칙적으로 법은, 개인의 삶을 최소한도로 꼭 필요할때만 규율하되, 일단 규율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예외없이 단호하게 규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따라서 최악의 법정책은 국가가 국민의 삶에 감놔라 배놔라 쓸데없이 참견하면서 정작 법을 어길시에는 이런저런 사정을 다 봐주며 무르게 법집행을 하는 경우가 된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전통적으로 후자에 속해왔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여지없이 이러한 한국적 법집행 문화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방역정책을 위반하여 제대로 처벌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법규정을 정해놓았으면 정부는 단호하게 집행과 처벌을 해야 하는데, 좋은게 좋은거라는 식으로 여전히 자율적 계도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래놓고 정부는 “국민의 자율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가 코로나에서 승리했습니다” 식의 자기 미화를 하고 있는데, 이는 위에서 말한 대한민국 고유의 최악의 법정책 문화를 더욱더 강화하는 꼴 밖에 안된다. 쉽게 말해 소위 “선량한 국민”들은 “남들은 방역 다 어겨가며 놀러다니던데 나만 지키고 손해잖아? 법 지키는 놈이 바보군.”, 이런식의 마음만 갖게 되는 것이다.
5.그래도 다른 나라 보다는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방역 실적이 수치적으로 좋은 것은 사실이다. 확진자수도, 중환자수도 미국이나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월등히 적은 것이다. 이를 근거로 정부의 방역정책을 우수하다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결과를 방역정책의 우수함이 아닌, “동아시아 특유의 통제에 순응하고 소극적인 문화적 분위기” 덕분이라고 본다. 우리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싱가폴, 대만, 홍콩 등 유교문화권 하에 있는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수치적으로 상황이 좋은 편이다. 특히 일본은 올림픽 때문에 방역을 사실상 포기하였음에도 유럽과 같이 사회적 패닉 상태까지 가지는 않았다.(혹자는 이들 국가들의 통계자료를 믿을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서양국가 만큼 상황이 나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환자가 폭증하여 사회가 마비될 지경을 통계적 장난으로 숨길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대한민국 정부 구성원 그대로를 유럽 어느 국가로 옮겨와 코로나에 대처하게 한다면 아마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은 좋은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곳에는 국민 개개인을 추적할수 있는 주민등록제도도, CCTV도 없으며, 각종 방역정책을 시행할때마다 수많은 군중들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며, 겁이 없고 쾌활하여 마스크 따위는 겁쟁이들이나 쓰는거란 마인드의 국민들을 통제하는 것은 여간 버거운 일이 아닐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축구 경기로 표현하자면 “못싸웠는데 우연히 이긴 게임”이라고 표현할수도 있겠다.
국민들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 여러 단계로 나뉘어진, 사실상 그 단계가 그 단계인 복잡한 정책들은 공무원들에게 자기들이 단계별로 체계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 쥐꼬리만한 지원금의 반대급부로 얻어진 국민의 희생에 기반한, 현 정부의 방역 정책은 무능한 공무원들이 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식 정책에 가까워 보인다. 굉장히 쉬운 플레이(?) 환경하에서 얻어진 좋은 결과를 가지고 “K-방역”이라는 둥, 자화자찬 하는 것은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