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감독은 오징어 게임을 비롯한 일렬의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즉, 드라마속의 게임의 구조는 현실의 세계와 완벽하게 1:1 매칭되는 형태의 메타포인 것이다. 게임 그 자체는 불공정하고 중독적인 자본주의 경쟁을, 호스트들은 지배계층을, 참가자들은 피지배계층을 상징한다. 지배계층도 그 나름의 서열이 존재하듯, 게임속 호스트들도 동그라미, 세모, 네모등의 서열을 가지고 있다. 피지배계층의 신분상의 다양함도 게임에 반영되고 있는데, 의사나 명문대 출신의 증권회사 직원과 같이 제법 잘나가는 직종부터 깡패, 동네 백수와 같이 하류계층까지 다양하게 모여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지배를 받는 노예신분임에는 동일하다. 현실에서 서민들이 경제적 성공이라는 꿈을 꾸며 밤낮으로 경쟁을 하듯이, 게임속 참가자들도 모두 상금이라는 미끼에 끌려 목숨을 담보로 경쟁적인 게임을 한다. 하지만 이들 경쟁은 그저 지배계층의 지위를 공고히 해주는 허울좋은 환상일 뿐이다.
한국 드라마가 흔히 가지는 단조로운 캐릭터에서 벗어나 선악이 모호한 인물이라는 설정을 시도 하고 있고 어느정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에피소드 “깐부” 편에서의 등장인물간의 비극적 서사는 제법 탁월하다. 아울러 곳곳에 배치된 특유한 형광색 색감을 비롯해 세트장, 소품등으로 구현한 미장센도 멋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몇가지 결정적인 문제때문에 명작이 될 기회를 놓치고 “그럭저럭 볼만한 평범한 드라마”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와 사건의 개연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마치 감독이 정해 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선형으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작품속에서는 사라져 은폐되어야 하는 감독의 의도가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와 강렬하게 의식된다. 예를 들어 이정재는 구슬치기 게임을 속여 할아버지를 죽이는 악한 모습을 보이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에피소드에서는 마치 정의의 투사처럼 행동한다. 이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다채로운 캐릭터 묘사가 아닌, 그저 마지막에 살아서 등장하는 할아버지를 통해 반전을 만들기 위함일뿐이다. 또다른 예로, 단한번의 섹스를 했을뿐인 사기전과범 한미녀는 왜 깡패와 동반자살을 했을까? 한이 맺혀 그랬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개연성이 떨어진다. 이것도 극의 후반에 다다른 감독이 시나리오를 위해 등장인물을 묶음으로 버린 것에 불과하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이 끝나고 등장인물들은 각각 다음 경기가 무엇일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는 위험을 무릅쓰고 환풍구를 타고, 누구는 정보를 캐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무슨 경기 인지를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이 시점에서 감독이외에는 아무도 알수가 없다. 시나리오에서 정해진 목표를 따라 캐릭터들이 움직이다 보니 황당한 결과가 나온것이다.
시나리오를 위해 캐릭터가 억지로 그것에 끼워맞추는 형태로 서사가 진행되다보니, 관객은 위화감을 느끼게 되고 다음장면을 쉽게 예측할수가 있다. 따라서 줄다리기 경기 이후의 에피소드부터는 긴장감도 많이 떨어지게 된다. 예측 가능성의 범위에서 모든것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가상의 게임 구조만으로 이미 감독이 원했던 사회비판적 메세지는 충분히 전달되었다. 아울러 관객은 참가자들이 서로 협동하면 된다는 교훈을 쉽게 알아차릴수 있다. 하지만 감독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반전을 만들어야 한다는 반전 강박 탓인지, 죽은줄 알았던 노인(고백하자면 드라마 초반에 나는 이 노인이 살아 남을것이고 주최측의 고위 인물일것이라고 예상을 했었다)을 등장시켜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 연설을 하게 만들고 의미없고 어색한 게임을 제안하게 만든다. 이미 노인이 자기 입으로 주요사실을 다 말해버렸는데 도대체 이 게임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관객은 지루함만 느낄뿐이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간략히 처리하여 사족을 들어내고, 캐릭터의 개연성을 살릴수 있는 서사를 추가하고, (이를 테면 한미녀의 어린시절 회상씬을 통해 그녀가 버림받는것에 과하게 예민하다는 설정을 부가하는 식으로) 서사의 설정을 조금만더 정교하고 짜임새있게 짰더라면 수준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쨋든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재미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허나 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장르의 특성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장르는 그 장르 자체만으로도 긴장감을 주고 재미있을수밖에 없는 일종의 재미전달의 플랫폼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감독은 이 플랫폼에 살짝 승차 했을뿐이다. 속된 말로 누가 만들어도 이같은 장르는 최소한 평타는 친다는 얘기다. 아무튼 여러모로 아쉬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