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대게 “생각”이란 것을 하지 못한다. 생각없이 이미 자신의 뇌에 조성된 편향에 따라, 자동반응하는 기계에 다름없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애국심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애국심이란 무엇일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애국심이 뭔지 모른다. 자신이 애국적이라 자청하는 사람조차 마찬가지다. 애.국.심.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 쯤 되겠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랑의 대상이 되는 “국가”란 대체 무엇일까?
국가란 정말 애매모호한 개념이다. 일단 여기서는 우리가 중학교때부터 배웠던 식상한 정의에 따르기로 하자. 이에 따르면 국가란 국민, 영토, 주권을 필수 요소로 구성되는 개념이 된다. 결국 한국인에게 있어서 애국심이란 “대한민국의 국민, 영토, 주권을 사랑하는 마음”이라 풀어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민, 영토, 주권 각각은 또 무엇일까? 애국심을 발휘하는 사람의 뇌에 한반도에 거주하는 5천만 국민의 모습이 표상된다는 말인가? 사실 아무리 발이 넓은 사람이라 해도 5천만 국민의 모습을 일일히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존재 할리가 없다. 애국적인 사람은 한반도의 영토를 떠올리며 “이 땅떵어리가 정말 사랑스럽다”고 감상에 젖는단 말인가?
결정적으로 국가에는 주권이란 극도로 추상적인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 주권이란 무엇일까? “국가의 주인될 권리”라고 풀어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이 참 애매하다. 많은 이들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헌법상의 주권 조항을 근거로 “우리 시민들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순박한 상상을 하곤 하는데, 길가의 보도 블럭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주인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주권이란 것은 법률상의 다른 권리에 비교해보아도 그 추상성이 훨씬 아득하다. 민법상의 소유권은 적어도 소유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 따위의 물건은 손으로 만질 수 있다. 채권 역시 권리의 대상은 내가 받게 될 “돈”으로서, 그 자체는 직접 만질수 있는 물건이다. 그러나 주권은 만질수도, 생각하기도 극히 곤란한 추상적 개념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인간의 뇌의 구조상 이러한 대상을 직접 명시적으로 사랑 할수 있는 자는 그리 많지 않다.
결국, 애국심을 정밀하게 분석해보면, “본인도 제대로 모르는 애매모호하고 정체불명의 흐리멍텅한 그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된다. 실제로 사람이 애국심이란 것을 가질때는 대게 자기도 모르게 머리속에는 막연한 이미지들이 스쳐지나갈 것이다. 펄럭이는 태극기같은 국가 상징물이 대표적이다. “국가”란 것이 막연한 개념이라는 것을 옛부터 권력자들은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모든 국가들은 막연함을 뚜렷한 객체물로 바꿔줄 각자의 상징물로서의 국기를 갖고 있다.
애국심의 보다 중요한 문제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속성에 있다. 애국심은 필연적으로 “배타성”을 가질수 밖에 없다. 즉, 애국심은 한 국가의 국민이란 집단에서 발현되어, 다른 국가와 비교하고 구분짓고, 다른 국가를 증오하고, 공격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애국심이 전체주의자나 독재자의 애용물이 되어온 이유다. 애국심이란 단어가 가진 “사랑”이란 문자와는 다르게, 애국심은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이다.
얼마전 차기 대선에 출마한다는 어느 후보가 자신의 “애국심”을 자랑하고자 온가족이 모여 애국가를 부르는 사진을 공개한 것을 보았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꼭 “세기의 천재”나 “위대한 지성”만이 할수 있는 자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초보적인 분별력은 가진자가 해야하지는 않을까? 애국심의 의미조차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니 꿈도 참 야무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