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
인트로덕션은 소개, 도입, 처음 이란 뜻을 담고 있는데, 영화 제목처럼 유학생 주원과 어머니의 옛 친구와의 첫만남, 영호와 남자배우와의 소개 자리등 ‘인트로덕션’을 소재로 한 소품 몇 가지를 묶은 작품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때의 묘한 긴장감과 어색함, 사람과 사람사이의 공적인 거리감이 정교하게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같은 소재를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감독 나름의 주제 의식은 분명히 있겠지만, 그 주제는 희미하게 산란된채 놓여져 있다. 그리고 이 희미함은 어떤 정교한 영화적 장치에 의해 숨겨진 것이 아니라, 그저 주제 자체의 힘이 약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는 사실 홍상수 영화 전체의 특징중 하나인데, 뚜렷한 주제의식이 존재하지 않아 영화가 마치 회화처럼 보인다. 이것을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영화가 갖는 고유의 힘을 약하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나는 단점이라 말하고 싶다.
#2
두번째 소품 초반에 두 모녀가 열쇠로 문을 못열어 고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고 웃었는데, 나도 독일 유학시절 똑같은 경험을 한적이 있기 때문이다. 독일의 자물쇠들은 어찌나 뻑뻑한지 힘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아마도 홍감독 역시 본인이 직접 경험을 했던지 주위에서 고생하는 장면을 보았으리라. 그것을 놓치지 않고 영화적 소재로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능력은 홍상수 감독의 탁월한 점이다.
#3
마지막 소품에서는 여자친구이외의 딴여자와는 키스를 할수 없어 영화배우를 관두었다는 영호와 남자배우와의 격렬한(?) 논쟁 장면이 나온다. 이 논쟁에 대해 잠시 짚어보는것이 좋겠다.
일단 홍상수의 다른 영화와는 달리 이 영화의 세가지 이야기는 모두 시계열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즉, 세 이야기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시공간을 공유하는 공통된 인물들이다. 첫번째 이야기에서 영호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간호사와 포옹을 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영호가 거짓된 핑계를 댔다는 것을 쉽게 알수 있다. 아마도 영호는 단순히 영화배우가 하기 싫다던지 나름의 다른 이유가 있었을것이다.
아무튼 논쟁의 핵심을 살펴보면, 남자배우는 육체적 관계는 그 관계 나름으로 좋은 것이며, 그 곳에는 나쁜것이 없으므로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할수 있다는 주장을, 영호는 육체적 관계를 다른 여자와 맺는다면 여자친구와의 정신적 관계가 손상되므로 다른여자와의 육체적 관계는 나쁜것이라는 주장을 한다. 언뜻보면 남자배우는 육체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에로스적인 입장이고, 영호는 정신적 관계를 중요시하는 플라토닉한 사랑을 추구하는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남자배우는 육체적 관계의 가치를 하찮게 보아 그것이 애당초 정신적 관계를 침범할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영호는 육체적 관계가 정신적 관계를 침범할 수 있을정도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다.
사실 이 논쟁은 생각해볼 여지가 많고 나름 난해한 주제이다. 이 주제가 영화속에서 아주 세련되고 정교하게 묘사되어진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영화의 틀안에서만 간단히 살핀다면, 나는 남자배우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키스건 섹스건 어짜피 결국엔 피부와의 마찰이 아닌가? 그것은 그것 나름으로 기쁨을 주는 좋은 행위일 뿐이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육체적 관계에 정신적 가치를 지니는 무언가 형이상학적인 숭고한 힘이 있을리는 만무하다. 요컨대, 정신적 관계와 육체적 관계는 분리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