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에서 두 남녀의 맞은편에 홀로 앉아있는 여자는 사실 남자와 예전에 사귀었던 사이이다. 영상의 앞부분은 이 여자가 사랑을 고백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은 앞부분이 상상이었음이 밝혀지는 장면이다.
통상적인 상상의 연출이 상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는 영화적 장치 — 이를 테면 갑자기 화면이 흑백으로 바뀐다던지 — 에 의존하는 것에 반하여 여기서는 상상을 현실과 뚜렷한 구분없이 섞는 방식으로 연출하고 있다. 말하자면 넓은 의미에서의 “초현실주의”적 연출이라고 볼수도 있겠다.
이러한 연출방식은 홍상수 감독도 즐겨사용하고 있는 것인데, 홍 감독과 류스케 감독의 차이점은 류스케 감독의 방식이 조금더 관객에게 친절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 의외성을 오히려 효과적으로 살렸다는 점에 있다. 따라서 류스케 감독의 본 방식이 더 나은것이라 볼수도 있겠다.
영상에서 상상과 현실을 가르는 지점은 여자가 두눈을 손으로 가리고, 이 모습을 갑자기 줌인으로 클로우즈업하는 부분이다. 이 강력하고 역동적인 줌인의 운동성이 상상과 현실을 분명하게 구분지어주며 관객에게는 일종의 “충격의 심상”을 전달해 준다. 이 심상은 바로 이어 나오는 현실이라는 반전의 충격과 고스라니 연결된다. 아울러 여자가 두눈을 가리는 것은 초반부 고백에서 오는 좌절감과 이것이 사실 여자의 상상이었다는 사실을 동시에 함의한다.
심리적으로 대단히 효과적이며, 미적으로도 우아하고 색다른, 독창적인 연출의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