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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평론가들이 행하는 별점평은 여러 문제들을 가지고 있어 폐지되어야 할 제도인데, 이에 관한 쉽고 자세한 설명은 일전에 내가 쓴 “초보자 영화 가이드”에서 소개한바 있다. 이 글에서는 좀더 간략하게 요점을 짚고 위 가이드에서 다루지 않은 논점 몇개를 소개하겠다. 이 글의 설명이 어렵게 느껴지면 아래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참고하기 바란다.
관련 초보자 가이드 글 1 링크
관련 초보자 가이드 글 2 링크
1. 별점평 반대론의 핵심
1.우선 이 글은 크게 보아 “영화평론가”라는 전문가의 직업윤리와 관련하여, 그들의 직업수행 도구로서의 별점평을 다루고 있다. 일반인 관객들이 별점평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문한다.
2.별점평은 계량적 시스템이며, 모든 계량적 방법론은 엄격하고 기계적인 절차에 따르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량의 기준이 되는 “척도”인데, 영화 별점평에서의 척도는 평론가의 내심의 의사안에 있어 극히 주관적이며 사실상 척도가 없는 것과 동일한 상황이다. 따라서 평론가가 영화의 가치를 측정하는 별점은 일반인이 예상하는 것보다 정확도가 훨씬 떨어지게 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적 증거들은 아래와 같다.
1)인간의 의사판단과 관련한 수많은 인지심리학적 실험들
2)영화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인 이동진씨가 180여 차례에 걸쳐 과거에 했던 별점평을 공개적으로 수정한 사실(참고로 그는 이를 별점평의 하자로서 문제 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지적 개방성의 증표로서 자랑스럽게 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상당히 황당하게 생각한다. 애당초 별점평을 안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3)누구나 별점평을 매길때 겪게 되는 오차들의 경험들
3.별점평은 영화의 가치를 단순히 압축하는 효과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가치를 심각하게 왜곡하여 전달한다. 왜곡하는 성질 및 분야는 다음과 같다.
1)상기 2에서 살펴보았듯이 영화가 가진 특정한 하나의 가치 요소에서의 가치의 양을 왜곡
2)영화가 가진 여러가지의 가치 요소를 단하나의 숫자로 환원함으로서 가치의 질을 왜곡
(예를 들면 터미네이터2와 시민케인은 질적으로 다른 상이한 가치를 갖는데 별점평은 이를 왜곡하여 하나의 숫자로 가치 평가하게 된다)
3)대중들에게 영화라는 예술이 점수비교를 통한 “상대평가”의 대상이 된다고 손쉽게 인식하게 만듬
4. 별점평은 “예술적 가치”라는 무형의 무언가를 “숫자”로 환원할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영화평론가라는 전문적 직업인이 하는 것은 굉장히 성급하고 조심성 없는 일이다.
5. 별점평 말고 유해성이 훨씬 적은 다른 비평수단도 존재한다. 이를테면, 짧은 단평으로 별점평을 충분히 대체할수 있다. 명백한 대체 수단이 존재하므로, 굳이 문제의 여지가 많은 별점평을 평론가는 고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단평으로 별점평을 충분히 대체할수 있음을 아래와 같이 시현해 보이겠다. (참고로 아래 단평은 이 글의 주제를 위한 예시로서 제시된 것이지 실제로 해당 영화에 대한 나의 평가가 아니다. )
박찬욱 감독, 헤어질 결심:
1)별점평 : 별 다섯개 만점
2)단평 : 스릴러라는 장르로 만든 독특한 사랑 이야기. 박찬욱 감독의 완벽성의 절정.제임스 카메론 감독, 터미네이터 2 :
1)별점평 : 별 다섯개 만점
2)단평 : 예술적 경지에 오른 액션의 향연. 이 영화는 역사가 되었다.
위에서 별점평은 관객에게 두 영화가 “같은 영화”라는 왜곡된 정보만을 준다. 아니, 오히려 두 영화가 간편하게 “비교”하는 작업이 가능하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단평의 경우 왜곡이 아얘 없다고 할수는 없겠지만 별점평에 비해서는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왜곡이 훨씬 적다. 그리고 단평으로도 충분히 쉽고 빠르게 영화의 가치에 대한 정보를 일반적인 대중 관객들에게 압축해서 보여줄수 있다. 만약 위와 같은 수준의 단평도 읽기 귀찮은 관객이 있다면 그러한 이들은 애당초 영화를 이해할수 없는 사람들이며, 그들을 위해 굳이 건강한 비평체계를 망가뜨려가며 별점평이라는 문제 있는 수단을 동원하는 친절은 배풀 필요가 없는 것이다.
6.별점평이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조금은 낭만적인 근거도 가능할 것이다.(참고로 이미 근거들이 충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이유까지는 불필요하다고 보는데, 아마도 정성일 평론가는 이러한 근거를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숫자로 무언가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간편”하다. 평론가 입장에서는 장문의 평론글을 쓸 필요가 없으므로 “간편”하고,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글을 읽지 않아도 되니 “간편”하다. 모든 것이 간편하게만 이루어지는 세상속에서 이렇게 “간편”하게 살려는 자세를 영화 예술에까지 보이는 것이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이다.
7.영화 평론가가 별점평을 할수 있는 단 한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스스로 “영화 평론가”임을 포기하면 된다. 평론가에서 일반인으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별점평을 할수 있는 것이다. 대중들의 오해가 없도록 자신을 “영화 평론가”로 소개하지 않고 “영화 산업 마케터”, “영화 소비자 리포터”, “영화 쇼호스트”라는 명칭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별점평을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2. 별점평 찬성론 예시 분석
위에서 영화 별점평 반대론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누군가가 별점평에 대해 찬성을 하겠다면, 위에서 열거된 다섯가지의 근거들 모두를 빠짐없이 논파해야지 설득력을 갖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는 대단히 어려운 작업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영화 평론가들이 별점평을 그들의 주요 평론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관습은 폐지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많이 분명해 보인다.
그럼 여기서 별점평 찬성론 예시 한가지를 분석해 보자. 아래와 같은 별점평 찬성론이 제기 될수 있다. 이 주장의 문제를 살펴보겠다.
1.건축이나 사진작품의 경우 별점평이 이루어지지 않지만, 맛집이나 책과 같은 경우는 별점평이 널리 행해지고 있다.
2.이것은 맛집이나 책의 산업적(상업적) 성격 때문이다. 영화 역시 문화 산업이므로 별점평이 유효할 것이다.
3.별점평은 효율적이고 간편하기 때문에, 고급문화 향유층이 아닌 대중관객에게 특별히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1.먼저 이 주장 전체는 앞서 설명했던 “영화 별점평 반대론”에서의 다섯가지 근거중 어느 한가지도 전혀 논파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거꾸로 다섯가지 근거들로 위 주장을 손쉽게 모두 논파 가능하다. 따라서 사실 더 이상의 검토는 필요가 없지만, 이 주장 자체가 가진 논리적 오류도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계속 살펴보겠다.
2.별점평 문제는 주로 영화 평론가들의 직업윤리와 관련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질수 있다. 즉, 일반인이 별점평 하는 것은 일단 여기서는 논외로 하는것이다.(물론 일반인이 별점평 하는 것이 권장된다는 말은 아니다. 별점평 자체가 유해한 것인데, 일반인은 전문가적 권위가 없으므로 그들이 별점평 하는 것은 유해성이 적으므로 일단은 따지지 않겠다는 말이다). 위 주장은 영화 평론가의 별점평과 일반인의 별점평을 혼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위 주장의 1번에서, 맛집이나 책은 별점평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은 틀린것이 된다. 전문적인 음식비평가나 서평가는 대체로 별점평을 하지 않는다. 사실 전문가 영역에서 별점평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는 영화가 거의 유일하다. 이 사실도 별점평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방증해준다.
3.위 주장의 2번은 토론의 주제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도 산업이므로 별점평이 유효하다”는 주장은 영화 마켓팅 업자들에게 알맞은 것이다. 토론의 주제는 “영화 별점평이 평론 수단으로서 가치가 있는가?”이다. 상업적으로 유익하다는 것이 평론수단으로서의 유익함은 전혀 보증하지 않으므로 2번 주장은 논점을 일탈한 오류가 있는 주장이 된다.
4.위 주장의 3번에서 쉬운 별점평이 대중관객에게 유효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별점평 반대론의 다섯가지 근거로 논파가 가능함은 이미 밝혔다. 그러나 이 부분은 추가적으로 세가지 문제를 더 가지고 있다. 이를 짧게 밝혀 놓겠다. 첫째는, 대중관객이 잘 보지 않을 어려운 예술영화에도 별점평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이 주장은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도그마적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민주주의를 내심적으로 “다수결의 원칙”과 혼동하여, “대중에게 좋으면 그것은 좋은것이라는” 잘못된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요컨대, “어떤것을 대중이 선호하는지 여부”와 “그것의 진리 여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이것은 중세시대 대중이 천동설을 선호했다고 그것이 진실이 아닌것과 같은 이치다. 셋째는, 이 문제는 어떠한 “엘리트주의” 혹은 “권위주의”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문제다. 이 문제는 “무엇이 진실이냐”는 진리판단의 문제이다. 즉, 별점평을 반대한다고 대중관객을 가벼히 여기는 엘리트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밝혔듯이 별점평 반대론은 별점평을 대체하는 단평으로도 대중관객에게 충분히 호소할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