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사항:
(1)아래에서 다루는 “예술병”은 정신의학, 임상 심리학에서의 공식적인 질병 명칭이 아닙니다. 인터넷상에서 특정한 태도나 행동 유형을 설명하기 위해 널리 사용되는 유행어의 하나입니다.
(2)이 글의 내용은 진지하나, 표현 형식은 기본적으로 가볍고 유머러스한 자세를 가지고 소논문 형태를 패러디 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이 글은 학술적 용도로 사용되기에 부적합합니다.
(3)예술과 영화에 관심있으신 분들은 제가 운영하는 다음의 유튜브 채널과 사이트에 방문해보세요.
유튜브 채널 @dayzart_official
예술사이트 dayzart.com
1.증상
예술병의 외관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1)어떤 예술과 관련된 행위 — 그것이 창작행위인지 그밖의 행위인지는 불문한다 — 를 하면서 (2)어렵고 난해한 예술적 표현이나 그 예술적 표현에 대해 설명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이때 조건 (2)는 대체로 사회통념에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정상적인 예술가도 외관상으로 위의 증상을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다. 즉, 정상적인 예술가 역시 어렵고 난해한 창작행위를 하면서 그것에 대하여 난해한 설명을 덧붙이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판정 대상자가 정상적인 예술가인지, 소위 말하는 예술병 환자인지는 외관상 특징만으로 구별하기는 어려우며 이것이 특별한 진단법이 필요한 이유다.
2.질병의 원인과 치료의 목적
구체적인 진단법과 치료법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예술병의 원인과 그것을 치료해야 하는 당위성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이 질병의 1차적인 원인은 “허영심”으로 생각된다. 즉, “남들에게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망”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에 있어서는 “진실성”이 필수적 요소이므로, 예술병은 예술가의 창작활동과 수용자의 감상행위를 치명적으로 방해하게 된다. 이것이 예술병을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목적이 된다.
3.진단법
예술병은 외관상 행위만을 통해 직접적인 진단이 어렵기 때문에 행위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단하는 방식으로만 진단이 가능하다. 이는 외부인은 물론이고, 예술가 본인이 스스로 자가 진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예술병에 이미 감염된 자는 심각한 자아도취에 빠져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자가 진단의 정확도는 외부진단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을 것이다.
나는 진단법으로서 두가지 방식을 제안한다. 첫째는 “표현 분석법”, 둘째는 “기반 철학 분석법”이다. 두가지 방식 모두 대상자를 직접 인터뷰하거나 발언을 담은 전언문, 창작된 예술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진단이 가능하다.
(1)표현 분석법
이는 대상자의 발언이나 창작된 작품에서의 표현이 가지는 “불필요한 수사의 정도”를 분석하는 것이다. 즉, 대상자가 불필요하게 꾸미며 말을 한다던지, 그가 창작한 예술품이 특별한 필요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우면, 대상자가 진정성이 없이 허영심에 기반한 표현을 한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가상의 사례를 한가지 살펴보자. 가상의 영화 배우 A씨가 일반인 대상의 영화 시사회에서 아래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 가정하자.
영화 감독이라는 하나의 주체가 창조해낸 상징계적 질서속에서 저의 에고는 현실의 그것과 충돌하여 양분될수 밖에 없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저를 구원한 것은 제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디오니소스적인 열망, 그것 하나뿐이었으며 이것이 무한한 반복으로 점철된 제 연기를 여러분께서 까뮈가 말한 시지프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저의 말을 이해하신다면 다보시고 별점 다섯개 부탁합니다.(윙크) — 가상의 영화배우 A씨
위 영화배우의 말은 한마디로 “감독님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고생했는데 열정으로 버텼습니다. 전 매번 어려운 작품만 만나서 인생 x같네요. 아무튼 많이 사랑해주세요.”이다. 이렇게 쉬운 명제를 위 영화배우처럼 어렵게 말할 필요성은 전혀 없으며, 수사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용어들, 상징계적 질서, 에고, 디오니소스적, 시지프 등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 시사회라는 장소에 맞지 않는 과한 쓰임이다. 허영심이 짙게 뭍어 나와 오히려 천박해 보이기 까지 하는 위 영화배우는 전형적인 예술병 환자의 징후를 보이고 있다.
(2)기반철학 분석법
이는 대상자의 창작의 배경이 되는 철학을 검토하여 예술병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창작물과 대상자가 갖고 있는 철학의 “견련성의 정도”를 판정 기준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도 아래 가상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강남역 출구에서 매일 아침 두명의 사람이 알몸으로 머리에 두꺼비 탈을 쓰고 소주병을 들고 소주를 사방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두명의 사람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고 우연히 완전히 똑같은 퍼포먼스를 기획하여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기자가 이들을 인터뷰 한다.
기자 : 왜 사람들 많은 곳에서 병신짓을 하는 겁니까?
이상한 사람 1 : 네. 저는 지난 20년간 고시원에 갖혀서 만두만 먹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는데요. 매번 떨어져서 좌절하던중, 서점에서 우연히 들쳐본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책을 보고 “아! 진정한 행복은 쾌락이구나! 술쳐먹고 노는게 최고였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어서 이렇게 저의 깨달음을 여러분께 예술로 보여드리고 있는 겁니다.
기자 : 당신의 또라이 짓도 공무원 시험 때문인가요?
이상한 사람 2: 아뇨. 전 그냥 예술하는건데.. 예술하면 기부니가 조크든요.
먼저 이상한 사람 1에 대하여 검토해보면, 이 사람의 철학은 “공무원 시험 20년 불합격”이라는 “경험”과 “철학자 에피쿠로스”에 대한 “후험적 학습”의 결과물이다. 이 철학과 “소주 뿌리기”라는 예술 행위와는 상당한 견련성이 인정된다. 물론 이 사람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주의 사상을 정신적인 것이 아닌 신체적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이러한 오해가 견련성의 핵심을 깨뜨리지는 않는다. 따라서 이상한 사람 1은 그것이 좋은 예술인지는 별론으로 하고, 일단 예술병 환자는 아니다.
이상한 사람 2는 철학이란 것이 애당초 없으며, 막연하게 기분이 좋다는 감정적인 이유로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정적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허영심의 충족”일 가능성이 높다. 이 사람은 철학과 행위간의 견련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예술병 환자에 해당된다.
그러나 실제 사례에서는 위와 같은 가상의 사례와는 달리 판정이 어려운데, 본래 예술은 주로 “직관”에 의존해 창작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상적인 예술가에게도 그 창작 의도를 물으면 “왠지 그렇게 해야 할것 같았다.”, “그것이 느낌이 좋다”는 식으로 답변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보다 복잡하게, 이 예술가의 전체 생애나 예술 활동의 일관성 여부등을 종합하여, 여기에서 다시 그의 철학을 간접적으로 추출한 후에 예술행위와의 견련성을 살펴야 한다.
3. 실제 임상 사례
이제 실제 임상 대상자를 상대로 예술병 여부를 판정해보자. 여기서는 “기반 철학 분석법”을 사용하여 일본의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시인으로 활동했던 데라야마 슈지를 진단해 보겠다.
데라야마 슈지의 작품들은 사회 통념에 벗어나는 기괴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상을 열거하면, 엄마 창녀론, 도박을 열심히 하자는 도박 애찬론, 자살을 권장하는 자살 애찬론, 고시원에 살면서 고급 스포츠카를 사라는 독특한 경제관념 등을 주장했다.
언뜻 전형적인 중증 말기 예술병 환자처럼 보이는 그의 주장은 사실 어린시절의 불우한 경험과 청년 시절의 엄청난 독서를 통한 후험적 학습의 결과물이다. 구체적으로 주로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변형한 것인데, 예를 들면 도박 애찬론은 앙드레 지드의 “우연성” 개념을 도박의 “우연성”과 연결시킨 것이다. 아울러 도박에 전 재산을 “올인” 하려는 상대를 꾸짖는 등 의외로 건강한 “상식”은 잃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슈지는 자기 나름의 견고한 철학을 갖고 있으며 — 그것이 좋든 좋지 않든 간에 –, 이를 “논리적”인 견련성을 유지한채 자신의 창작품에 연결시키고 있다. 따라서 그는 예술병 환자가 아니다.
4. 치료법
나는 아래의 두가지 치료법을 제안한다.
(1) 독서
예술병의 원인이 철학의 부재이므로, 풍부한 독서를 통한 후험적 학습으로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것이 가장 좋은 예술병의 치료법이다.
(2) 자기 통찰
예술병의 직접적인 원인은 “허영심”, 즉 “남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망”인데, 사실 이러한 허영심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멋지다는 착각이 계속 들고 있다. 다만 예술병 환자의 경우 비정상적으로 허영심이 과다한 경우라 하겠는데, 그런 비정상적인 심리상태를 가지게 된 다른 이유가 있을것이다. 이것을 자기 통찰을 통해 밝혀 내는 것이 두번째 치료법으로 제안될수 있다. 그러나 본래 자기 통찰은 극도로 어렵고 중증의 예술병 환자는 이미 자아도취에 빠진 상태이므로 자기 통찰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보다는 상기 독서 치료를 우선적으로 권장한다.
5.결론
예술병은 “진정성”과 “솔직한 자기표현”이라는 예술의 가장 기초적인 근간을 무너뜨려 예술가와 예술 수용자 모두에게 극히 해로운 것이다. 그러나 예술병은 한 인간의 정신적 결함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스스로 밝혀내고 극복해낸다면, 마치 고혈압 환자가 식이요법을 통해 오히려 무병장수하는 것처럼,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어 보다 높은 예술적 경지에 오를수도 있는 기회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