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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망의 마지막 편이군요.🎉🎉🎉 지난 편에서 예고했듯이 오늘은 영화 평론가의 별점평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별점평, 정확성과 서비스정신 사이의 딜레마일까?
여기 어떤 초등학생 여자 아이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이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묻습니다. 엄마는 90점, 아빠는 50점이니까 엄마가 더 좋답니다. 함께 살고 있는 한살 많은 오빠는 20점입니다. 그렇다면 키우는 고양이는 몇점? 고양이는 50점입니다. 어라! 오빠가 고양이만도 못한 존재가 되었네요. 뭔가 좀 이상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고양이보다 못할수는 없죠. 그래서 오빠의 점수를 20점에서 70점으로 올려줍니다. 엇! 이번엔 아빠가 너무 낮아졌네요. 그래도 돈벌어오시느라 수고하시는데 오빠보단 높아야죠. 그래서 아빠를 80점으로 바꿉니다. 그렇다면 이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는 몇점일까요? 솔직히 고양이보다 피자 먹는게 더 좋은데 60점으로 할까요? 그래도 그렇지 하나의 생명인 고양이가 피자보다 못하다는건 좀 이상하네요. 아이는 혼란에 빠집니다. 그렇다면 1등에 당첨된 로또는 몇점일까요? 솔직히 로또가 엄마보다 좋으니 100점으로 하고 싶지만 남보기 좀 그러니 로또는 80점으로 해둡시다. 엇! 아까 돈버느라 수고했다고 아빠를 80점으로 만들어 줬는데, 솔직히 우리 아빠가 평생 로또 당첨금보다는 돈을 못벌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엔 아빠를 70점으로 내립시다. 엇! 이번엔 아빠랑 하는일 없이 놀고 먹는 오빠가 70점으로 같아졌네요!!!……😵😵😵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별점평을 매깁니다. 보통 꽉찬 별(★)과 별 반개(☆)를 이용하여 꽉찬 별 다섯개를 만점으로 두니 10점만점의 열단계로 계량화된 평가방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위 여자아이가 하는 작업과 영화 평론가들이 별점평을 매기는 작업은 그 성질상 거의 동일하고 실제로 영화 평론가들은 별점평을 매기면서 위 여자아이가 겪는 난관을 만나게 될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에서의 별점평은 한마디로 말도 안되는 넌센스입니다.
먼저 별점평에 찬성하는 영화 평론가의 주장을 들어보죠. 사실 이 문제는 굉장히 쉽고 간단한 문제입니다. 찬성하는 쪽 입장도 아래의 주장을 벗어나기가 힘들죠.😉
영화에서의 별점평이 1)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사치에는 가까우므로 2)관객에게 아주 쉽게 영화의 가치를 알려줄수 있는 별점평을 포기할수는 없다.
여기서 2)번 “관객에게 그 가치를 아주 쉽게 알려줄수 있다” 부분은 당연히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별점평은 단 하나의 숫자로 계량화하여 표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점은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1)번이 진실이냐?”, 즉 “별점평이 정말로 근사치에 가까운 정보를 제공하느냐?”가 되겠는데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지요.😆 이것이 말도 안된다는 것은 정말 수많은 방식으로 증명할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뇌과학, 철학, 심리학, 기타 등등이 많겠는데, 여기서는 아주 쉽게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별점평을 “계량화” 방식이라 말했는데, 계량화는 원래 “과학적” 방법입니다. 즉, 준수해야할 엄밀하고 기계적인 절차가 있습니다. 제일 먼저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과 대상을 비교하는 절차에 따라야 합니다.
이것은 프랑스 파리에 보관되어 있는 “질량의 기준”인데, 정확히 1킬로 그램에 해당하는 백금 합금 덩어리를 온도에 따라 변하지 않도록 특수 유리안에 밀봉처리해놓은 것입니다. 세계 모든 곳에서 질량을 계량할때는 위 기준물체를 표준으로 삼게 됩니다. 즉, 위 기준보다 정확히 절반을 500그램으로, 그것의 절반은 250그램으로.. 이렇게 계량 하는 거죠 (참고로 몇년전 국제적인 합의에 따라 질량의 기준이 다른 기준으로 변경되어 위 사진속의 물체는 더 이상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화 별점평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화 평론가 머릿속에 이른바 “상상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물론 평론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나름의 “객관적인 기준”이 있다고 반박할 것입니다. 어쩌면 자기 나름대로 분야별로 만든 평가표 같은 것을 보여줄지도 모릅니다. 미장센 몇점, 몽타주 몇점, 연기력 몇점…그리고 총점 몇점! 이런식으로 마치 올림픽 체조 경기에서 점수 매기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미장센 점수의 기준은 또 뭘까요? 평론가는 아마도 “아 나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객관적인 기준으로 합니다” 라고 답할겁니다. 왕가위 보다 절반이면 50%를 준다는 거죠. 그렇다면 절반인 것은 또 어떻게 아는걸까요? 그건 평론가 머릿속의 “어떤 야리꾸리한 그 강렬한 느낌”의 정도가 마치 절반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겁니다.😆 이 “강렬한 느낌의 정도”는 평론가가 아침에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대폭 줄어들것이고, 반면 별점평을 매기기 직전에 달콤한 커피를 먹으면 확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평론가의 두뇌의 상태가 평생 그대로인 것도 아니죠. 더 많은 영화를 보거나 영화에 대한 공부를 더하게 되면 이 “강렬한 느낌의 정도”는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춤을 추게 될겁니다.
아무튼 평론가가 그 어떤 반박을 하더라도 별점평의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결국 별점평은 평론가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다음과 같다고 할수 있겠습니다.
별점평은 관객에게 1)맞는지 틀리는지 뭐가뭔지 좀처럼 알수 없고 그때그때 애매하게 달라지는 정체 불명의 그 무엇을 2)관객에게 아주 쉽게 전달하는 수단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병이 나을수도 있고 안나을수도 있는 뭐가 뭔지 알수 없는 애매한 약”을 환자가 너무나 먹기 쉽게 제공한다면, 그 의사를 환자가 먹기 쉽게 만들어 줬으니 서비스 정신이 훌륭한 좋은 의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언제나 뭐가 뭔지 불확실하다면 그냥 포기하고 안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별점평을 안해도 길게 평론글을 쓴다던지 그게 귀찮다면 지난 시간 살펴봤던 한줄평을 쓰면 될 것입니다. 구태여 불확실한 방법을 고집할 필요는 없는거죠.👍
영화 평론가는 왜 별점평을 하는가?
그렇다면 왜 상당수 영화 평론가들은 별점평을 고집하는 걸까요? 논리적으로 두가지 이유가 가능합니다.
첫번째는, 영화 평론가 본인이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했던 사항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전혀 모르고 정말로 자신이 “객관적인 평가 작업”을 하고 있고 오류가 무시할수 있을정도로 거의 없다고 믿고서는, 관객을 위한 서비스 정신을 발휘하여 별점평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결국 여기에 해당되는 평론가들은 인간의 정신구조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는 분들이라 할수 있는데, 저는 이런 분들이 생산하는 평론작업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이 문제는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문제가 아닙니다. 별점평이 타당한지 따지는 것 보다는 영화 평론 작업이 비교할수 없을만치 어려운 작업인거죠. 훨씬 쉬운것도 못하면서 어떻게 어려운 것을 할수 있을까요??
두번째는 영화 평론가 본인이 위에서 우리가 논의한 진실을 다 알고 있으면서 별점평을 매길 가능성입니다. 저는 사실 여기에 해당 되는 분들이 비율적으로 첫번째 보다 더 많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왜 진실을 알면서 별점평을 하는 걸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대중의 인기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죠.😆 무미건조한 한줄평, 지루하게 긴 평론글 가지고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습니다. 한줄평으로 멋들어지게 감수성 듬뿍담아 시한편 읊어주고, 그위에 큼지막하게 별을 딱 박아줘야 대중들의 눈에 확 들어올수 있습니다.😆😆 치열한 평론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름의 전략인거죠.👍 이분들은 저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응 솔직히 우리도 다 아는데, 너무 빡빡하게 그러지 말자. 인생 좀 둥글게 둥글게 살아. 대충 대충 하자 좀.”😆
물론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대충 대충 하는 것도 좋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대충 할때와 빡빡하게 할때를 구분할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배민에서 우리동네 떡복이집에 대충 대충 별점을 매기는 것은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떡복이집 아주머니께서 우리집 떡복이를 무시하냐😡고 화를 내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영화가 떡복이 보다는 비교할수 없을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중요한지는 그동안의 저의 글에 전부 담겨있으니 따로 말은 안하겠습니다. 여기가 떡복이집에서 떡복이를 먹는 상황인지 영화 평론을 하고 있는 상황인지 최소한의 분별력은 있어야 하는것이 영화 평론가란 직업인거죠.
한해에도 전국 연극영화과에서 수없이 많은 졸업생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들이 CGV에 자신의 영화를 거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고 간신히 운이 좋아 한편 올린 작품이 만약 망한다면 두번다시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 평론가가 매기는 별점 하나하나에 이들의 인생이 와따가따 하고 정말 재능있는 영화 감독이 별점 하나에 영영 기회를 잃는 불상사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즉, 영화 평론가들은 영화계내에서는 상당한 권력을 가진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대충 대충 해서는 곤란한 직업인거죠.
그렇다면 영화제에서의 평가는 어떨까?
칸이나 베를린 같은 영화제에서는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고 그에 따라 상을 줍니다. 이것도 별점평하고 똑같은거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영화 평론가들이 매기는 별점하고는 차이가 큽니다. 영화제에서는 계량된 점수를 내부의 심사에서만 사용하고 그 점수 자체를 공개하지는 않습니다. 즉, 칸 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 기생충 97점” 당신이 대상입니다. 이러지 않는다는거죠. 그냥 상만 줍니다.😄 계량화의 문제가 완전히 없는건 아니지만 여기서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넘어갈수 있는 수준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여기서도 좀 빡빡한 자세를 취하는데, 저는 상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나왔다면 모두다 나름의 가치를 가진 좋은 작품으로 봅니다. 즉, 상을 받았거나 못받았거나 구분짓지 않습니다. 상은 그냥 누구 하나 주긴 줘야 하니 예의상 한명을 찍어 준걸로 칩니다.😆 홍상수 감독의 <도망친 여자>는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지만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은 아무 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자는 그냥 그런 영화로 보고, 후자는 상당히 우수한 작품으로 봅니다. 수상 실적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거죠.
별점평 현명하게 이용하기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화 평론가들의 별점평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의 이 결벽증적이고 변태적인 별점관을 여러분께 권장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아래의 실용적인 방법을 제안하겠습니다.👍
첫째, 여러분(관객)은 당연히 별점평을 매겨도 됩니다. 제 위 주장들은 모두 “영화 평론가”라는 전문가의 직업 수행에만 관련있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여러분의 점수는 어떤 공적인 권위란 것을 갖지 않으므로 개인적으로 별점을 매겨도 상관없는거지요.😆
둘째, 제가 조사한 바로는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별점평이 문제가 되고 있더군요. 국내외 모두 별점평을 하는 평론가가 있고 반대하는 평론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별점평에 반대하는 평론가를 발견한다면 그 평론가를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분 나름으로는 상당히 큰 결심을 한 것일테니까요. 물론 별점평에 반대한다고 반드시 좋은 평론을 한다고 볼수는 없겠지만(좋은 평론가인지는 다른 여러가지를 살펴봐야 겠지요), 적어도 자신의 평론가란 직업에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열의에 넘쳐 활동하는 사람임에는 분명할 것입니다.
셋째, 평론가의 극단적인 별점을 참고할수는 있겠습니다. 즉, 극단적으로 낮은 별 하나짜리 영화는 뭔가 심하게 안좋을 가능성이 높긴 할겁니다. 반대로 별 다섯개짜리는 뭔가 좋긴 좋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극단의 점수만을 대강 참고하고 그외의 어중간한 점수는 그냥 무시하는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넷째, 절대로 별점을 상대평가용으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예를들면 A라는 작품이 별 네개고 B라는 작품이 별 다섯개라면, B가 더 좋은 작품이구나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별점평은 이런 비교를 할수 있는 정교한 수단이 전혀 아닙니다.
다섯째, 만약 여러분의 취향과 비슷한 평론가를 발견했다면 “가치 평가”가 아니라 “취향 판단”용으로 별점평을 사용할수는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일관되게 여러분이 재밌는 영화는 만점 주고, 재미없는 영화는 점수를 짜게 주는 평론가가 있다면 그 평론가의 점수를 보고서 영화를 보기전에 미리 영화의 재미를 예상해볼수는 있을 것입니다.
관객을 넘어 창작자로
여기까지가 제 연재글 시리즈에서 여러분께 전해드릴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몇가지 사항만 얘기하고 끝내기로 하죠.🎉🎉🎉
여러분은 단순한 관객에만 머물지 말고 창작자로 좀더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즐거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꿈같은 소리라고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핸드폰 카메라가 수십년전 걸작을 만들어내던 거장들의 카메라 보다 성능이 더 좋습니다. 마음만 먹는다면 여러분도 영화를 찍을수 있습니다. 단지 명작을 만들어낼수 있느냐의 차이지 누구나 영화를 일단 찍긴 찍을수는 있는거죠.
수십년전에는 아주 간단한 단편 영화 촬영조차도 거금이 들어가는 작업이었고 편집 한번 하려면 엄청난 장비와 전문지식이 필요했으나, 이제는 마음만 먹는다면 제작비 0원에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방구석에서도 영상 편집이 가능합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누구나 창작을 할수 있는 꿈같은 시대가 온 것입니다 (물론 좋은 창작을 하는건 별개의 문제지만😆). 제 말은 “창작자로서의 가능성”을 무시하지 말고 염두해두시라는거죠. 친구들과 모여 영화를 찍고 국내외 아마추어들을 위한 작은 영화제들이 많으니 응모해보시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리학 박사 학위가 없다면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여러분이 물리학 책을 사다가 공부해서 될일이 아닌거죠. 이 경우는 반드시 좋은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 연구소에 소속되서 연구하는 정규 절차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제가 볼때에 영화 예술의 경우는 여러분같은 아마추어의 자리가 아직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제가 영화학을 무시해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은 역사가 수천년에 이르러 이미 완성된 학문이지만 영화는 이제 고작 백년이 지나 막 시작하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학문 분야나 이처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아마추어들이 나름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거창할 것은 없고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패션에 관심이 많다면 영화속 패션들에 대해 주의깊게 보시고 그것을 중심으로 블로그에 감상평을 써보시기 바랍니다. 영화에서 패션이 하는 역할이라는 체계적인 연구가 될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신과 의사라면 영화속 캐릭터들의 병적인 성격묘사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조사할수 있을것입니다. 자동차광이라면 자동차에 대해서, 음식을 좋아하면 음식에 대해 쓰면 됩니다. 여러분도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끝으로
끝으로 한가지 사실을 밝히자면, 저는 예술관련 학문을 정규과정에서 공부해본적이 한번도 없고 스스로 시네필(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중 저보다 영화를 훨씬 더 많이 본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헐.. 대박! 이게 대체 뭔소리일까요?😱😱😱 여러분은 사기를 당한걸까요?? 😆😆
여러분중에 예민하신분은 그동안의 제 글을 다 읽었다면 예술에 대한 글 치고는 어딘가 모르게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을겁니다. 그건 단순히 기분탓이 아니고 전부 위와 같은 제 개성때문에 그런 것으로 지극히 정상적인겁니다. 👍
예전에 우연히 홍상수 감독의 어느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왜 봤는지는 기억도 안날정도로 아주 우연히 본 것입니다. 그런데 보고서 깜짝 놀랐는데, 먼저 대학생들 실습작처럼 보이는 어설픈 비주얼에 놀랐고, 다음으로는 제가 고민하던 어떤 철학적 내용이 영화속에서 튀어나와 놀랐습니다. “아니 영화로 이런 내용을 이렇게 만들수도 있구나!”하고 그때 당시에는 대단하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한 느낌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나서 흥미가 끌려서 홍상수 감독의 다른 작품을 연달아 보았는데, 세상에나! 제가 고민하던 내용을 영화속에 녹여 놓았더군요! , “이 사람이 혼자 엄청 고민을 많이 했구나” 감탄 하고서 유사한 다른 감독의 영화를 보고, 또 다른 감독을 보고.. 했는데 우와! 영화속에 다들 나름의 고민이 있는겁니다!!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거죠. 이런식으로 하다가 이 글을 쓰기에 이른 것입니다.😆
저는 영화속에서 감독의 고민과 생각을 직접 만나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영화라는 징검다리를 건너가서 스크린 뒤에 있는 감독하고 직접 악수하고 만나는 기분이 듭니다. 따라서 영화라는 미디어 자체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고, 그것은 제게는 매개체일뿐이고,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에 관심이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인간은 본래 이런 가짜에 휘둘리고 벗어나기가 극히 힘듭니다. 제가 지금 가짜뉴스나 사기꾼같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본연의 결함때문에 휘둘릴수 밖에 없는 우리 정신속의 가짜들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영화 창작자들도 이런 가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름의 노력과 고민을 하고 있으며, 이 고민이 저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지금까지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요즘같은 시대에 이 기나긴 연재글들을 다 읽으신 여러분들은 그 어떤 길고 지루한 예술영화도 가뿐히 소화해낼수 있는 인내심을 가진 분들입니다. 여러분들은 분명히 좋은 시네필이 될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쾌할하면서도 진지한 안내서 시리즈 잘 봤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네 도움이 되셨다니 기쁘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