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를 위한 한줄 소개 :
한 여자를 향한 변변치 않은 세 남자의 거세된 욕망이 그리는 독특한 권력 관계
1.평론
비록 배우 한예리가 영화의 중심에 있지만 이 작품은 그녀를 애워싸고 있는 세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진짜 주인공은 이 세 남자가 되는 것이다. 영화 속에는 조선족, 동성애자, 동네 건달, 탈북자, 경계선 지능장애자 등등 소위 말하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위치해 있는 여러 약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역시 또다른 약자인 조선족 여성 한예리를 사랑한다. 여기서 한예리는 욕망의 대상이자 권력의 주체가 된다.
한예리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따르는 남자와 키스를 하고 가슴을 허락한다. 자신의 여성성을 권력으로 이용할줄 아는 영특한 여성인데, 이 권력의 행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따뜻해보인다. 잔인한 힘이 다정함이 되는 모순이 여기 있다. 세 남자는 한예리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아얘 꿈도 꾸지 못한다는 말이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그녀를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의지한채 그저 유약한 집단으로 존재할 뿐이며 그녀를 감히 넘보지도 못한다. 그러나 한예리는 다르다. 그녀는 우연히 만나게 된 어느 멋진 청년을 갈망하고 세 남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를 따른다. 결국 세 남자와 그녀의 관계는 한 여자에 대한 거세된 욕망이 만들어낸, 결말이 예정되어 있는 “유보된 비참함”이라 말할수 있겠다.
형식적으로 본 작품은 논리적으로 상관관계가 없는 짧은 길이의 단편적인 삽화를 툭툭 던지듯이 연출되었다. 이 연출은 독특한 감성을 만들어 내는데, 영화 전체가 무언가에 갖힌 느낌 — 그것은 제목처럼 꿈일지도 모르겠다 — 을 주며 이 갖힘은 영화의 마지막, 컬러로 전환되는 부분에서 해방된다. 각각의 삽화들은 자연스러운 에피소드들이며 이 속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진짜처럼 살아있다.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누구의 꿈일까 궁금해하리라. 사실 누구의 꿈인지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장률 감독은 그간 꿈에 관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 왔는데, 그가 비록 본 작품을 의도적으로 누구의 꿈인지 애매모호하게 연출하였지만 내심 꿈의 주체를 정해놓기는 했을 것이다. 누구의 꿈인지 잠시 살펴보자면, 먼저 우리는 현실 세계의 합리적 태도로 작품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하에서 나는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흑백 연출 부분은 모두가 현실이고 마지막 컬러 부분은 아버지의 꿈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현실 세계에서 사지가 마비된 환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컬러부분이 꿈인 것이다. 아버지는 아마도 의식이 있어 사람들의 말을 알아들을수는 있는 것 같고 딸의 죽음을 알 것이다. 흑백으로 연출되었다고 그것이 꼭 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근거 없는 편견이고 위와 같은 주장에 따를때 논리적인 모순없이 설명이 된다. 결국 영화의 제목은 진짜 꿈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봄날의 꿈과 같은 현실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2.좋은 영상의 사례
#1
거울상을 창의적으로 잘 사용한 훌륭한 사례다. 극중 이주영은 한예리를 사랑하는 동성애자인데, 그녀는 한예리를 안마해주다가 슬며시 가슴을 만진다. 이 과정을 거울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데, 거울의 위치는 프레임의 구석이며, 크기도 매우 작다. 이는 의도적으로 관음증(voyeurism)적인 연출을 한 것으로서, 관객을 성적으로 은밀한 광경을 숨죽이고 엿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어서 씬이 전환되며 한 남성이 술을 먹고 있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역시 같은 거울에 남성의 얼굴이 비친다. 동일한 소품을 매개로하여 서로 다른 두 쇼트를 연결시켜 일종의 “soft-landing”을 시킨 것인데, 앞서의 관음증적 쇼트의 여운을 바로 없애지 않고 이어지는 쇼트에 그대로 가져와 자연스럽게 소멸시키는 효과를 낸다. 대단히 돋보이는 영상 연출 사례다.
#2
두 사람이 축구공 차는 장면에 이어서 남성이 당구공을 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두 쇼트 모두 “공”이라는 소품을 매개로 영상 이미지적으로 상관관계에 놓여있다. 이것이 어떤 대단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영상적인 경쾌한 리듬감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3
극중 김의성이 먼저 사무실내에 CCTV가 있음을 알린다. 그런데 곧바로 카메라를 보여주지는 않고 단지 김의성의 손가락과 두 사람의 시선으로만 암시될 뿐이다. 카메라는 잠시 지연되었다가 씬의 마지막에가서야 비로서 보여지는데 이는 의도적인 것이다. 소품을 마지막 씬의 종결시에 깔끔한 마무리를 위해 지연하여 활용한 것이다.
#4
영화에서 음악은 이미지와 충돌된다는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주장은 경청할만하다. 이같은 충돌의 부작용을 방지하는 방법으로 등장인물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방식이 있겠다. 영상에서 신민아는 술에 취해 남자친구와 헤어지는 상황에 알맞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노래가 분위기를 돋구어 표현하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고 여기서는 이 노래가 영상과 어떠한 충돌도 일으키지 않고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