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에릭 로메르 감독의 작품에서의 대화는 대사의 길이가 굉장히 길고 외형적으로 아카데믹한 철학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본 씬의 대화도 실제로는 5분이 넘게 진행되나 그중 일부만 편집하여 소개한다.
전형적인 로메르식 대화의 구조는 마치 정신분석가와 내담자간의 심리 상담과 같이, 아울러 토론에서의 대화와 같이, 한명이 물음을 던지고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이나 상황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하면 이어서 그에 대한 반론이 이어지는 식이다. 대사의 문체도 상당히 지적이며 교양있는 말투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본 사례에서도 이 같은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대화가 진행되는데, 남성은 여성에게 자신을 싫어하는 남자를 좋아할수 있는지 묻고 여성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는 욕망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일은 없다고 답한다. 이에 남성은 여성의 주장을 반박하며 그녀가 사실은 버림받는것이 두려워 격이 낮은 남자만 사귀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자연히 그녀를 좋아하는 남자만 사귀는 결과가 생기는 것이라 말한다. 영화의 끝에서 이 여성은 결국 자신이 동거하던 다른 남자에게 버림받고 슬퍼하며 위 영상의 남성에게 찾아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로메르의 영화에서 대화는 인간의 마음을 직접적으로 자세히 보여주고, 이것이 영화에서 발생되는 사건과 연관지어져(대게 모순되고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어떠한 주제를 표현하게 된다. 여기서 이렇게 구구절절 긴 대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문제가 된다. 이런식이라면 소설과 영화가 뭐가 다른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에릭 로메르의 인터뷰를 보면 그는 이같은 문제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영화는 문학에 가깝고 책처럼 읽히길 원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가진 이같은 문학성은 영화를 정적이게 만들고 지적 소양을 가진 관객에게 좀더 어필하게 된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는것이 목표가 아니고, 한정된 관객에게만 보여질 것을 염두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에릭 로메르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진 <드라이브 마이 카>의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도 장문의 대사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인터뷰에서 이같은 대사 위주 연출의 또다른 단점인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언어가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최대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봐야 한다는 식의 답변을 한다. 그런데 이 답변은 현실세계에서의 대화와 예술이란 공간에서 표현도구로서의 대화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