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평론
공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탁월한 작품이다. 말 그대로 장소와 배우의 연기가 주는 힘을 잘 느낄수 있는 영화다. 이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낯설은 로맨스를 과장되지 않은 톤으로, 그러나 그것의 강한 힘은 놓치지 않고 사실적으로 담고 있다.
영화는 크게 두 파트로 나뉘어 지는데, 전반부는 한국의 어느 영화 감독과 통역을 맡은 조감독(김새벽 분)이 촬영 조사차 일본의 시골 마을인 고조시를 방문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후반부는 동일한 장소에서 펼쳐지는 어느 한국 여자(김새벽 분)와 일본 남자(이와세 료 분)의 이틀간의 일들을 그린다. 여기서 후반부는 아마도 극중의 영화 감독이 찍은 영화로 보이는데,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액자소설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 된다.
전반부는 흑백으로 촬영되었고, 조심스럽게 관찰하는 듯한 심상을 야기하는 롱 샷의 구도를 — 심지어 대화 까지도 — 자주 사용하고 있고, 내용 역시 마을 주민들의 인터뷰 위주로 구성되어 있어 마치 한편의 다큐멘터리와 같이 느껴진다. 반면 컬러로 촬영된 후반부는, 두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아주 담담하고 사실적인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현실 세계인 전반부는 흑백이란 왜곡이 주어지고 신비한 소녀가 등장하는 등의 판타지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반면, 영화라는 판타지 세계인 후반부는 실제 보다 더 실제 같은 느낌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영화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는 현실과 판타지, 그리고 각각의 내부에 모순되게 존재하는 또다른 현실과 판타지적 요소는 충돌되어 역설적이게도 서로를 강화하는 효과를 거둔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현실은 더욱 현실같이, 판타지는 더욱 판타지 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작품 전체의 중심은 아무래도 후반부라 할수 있겠는데, 여기서 영화는 지극히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두 남녀의 첫만남의 흔한 경과를 아주 특별한 순간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이것은 이국적인 분위기의 장소와 김새벽, 이와세 료의 자연스럽고 꾸밈없는 연기 덕분이다. 공간과 배우라는 영화의 기본 요소가 어디까지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새삼 느끼게 해준다. 아울러, 전반부에서 감독 본인의 창작 철학을 살짝 엿볼수 있는 점도 재미있다. 일종의 판타지적인 영감을 지각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영화는 이처럼 예술에 있어서 신비주의적인 심도 깊은 직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PS. 영화의 포스터가 감각적이고 아름답다.
2. 좋은 영상의 사례
#1
의도적으로 화자(여기서는 이와세 료)의 모습을 일정 시간 보여주지 않고 노출을 지연시키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기법이 자주 사용되고 있는데, 주로 하나의 새로운 대화 시퀀스가 시작될때 시퀀스의 도입부에서 활용된다. 작품의 정적인 분위기속에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약간의 긴장을 유발하려는 목적이다. 비록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손쉬운 테크닉으로서 재치있는 방법이라 하겠다.
#2
두 사람이 마을을 걷는 모습을 롱 테이크로 담았다. 이국적인 풍경이 아름답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피사계 심도가 얕아 배경이 흐리게 잡힘과 동시에, 일정한 속도로 균일하게 화면이 이동함으로써 영상의 입체감이 만들어 졌다는 점이다. 이처럼 영화의 평면적인 스크린상에서의 입체감은 주로 원근감의 조작으로 이루어 지는데, 본 장면처럼 원근의 포커스를 달리 만들거나, 아니면 원근의 이동속도를 달리 만드는 방법(예시 영상 링크: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의해서도 실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