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는 주로 영상 형식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 작품인데, 영화 전체가 교과서적인 영상 사례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첫번째 시퀀스는 영화 도입부에서 오대수가 술에 취해 파출소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전체적으로 “점프컷”을 이용하여 상황을 압축해 전달하는 방법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몇가지 영화의 중요한 정보와 복선이 간접적으로 전달되며 이 역시 압축해서 빠른속도로 제시된다. 벽에 붙은 호돌이 포스터와 오대수가 부르는 가요는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 전후라는 시간정보를, 가족 사진과 딸의 이야기를 통해 그의 가족관계를, 그리고 영화 후반부에 상징적 기호로 사용되는 천사 날개가 여기서도 복선적으로 등장한다.
#2
오대수가 깡패들과 격투를 벌이는 시퀀스인데, 기존의 영화에서는 볼수 없었던 독창적인 구도가 사용되었다. 먼저 시퀀스의 처음과 마지막은 하이앵글로 오대수를 가까이에서 비추는데, 이는 복도의 끝까지 상황을 조망함과 아울러 오대수의 상태에 주목하는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격투 장면은 마치 비디오 게임에서의 횡스크롤 구도처럼 연출되었다. 이는 격투 과정의 잔인함으로부터 관객을 심리적으로 격리시키는 효과를 낸다. 즉, 관객을 철저히 제3자의 관찰자 시점으로 놓아두어 무미건조하게 바라볼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3
여자가 읽고 있는 책은 영국의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책이다. 그녀는 계관 시인 테드 휴즈의 배우자인데, 젊은 나이에 자살한다. 즉, 이 장면은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거라는 운명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이처럼 책이나 그림등의 소품의 배경이나 의미를 그대로 이용하여, 그것을 일종의 기호로서 사용하는 방식이 영화에서 널리 사용된다. 사실 이러한 방식이 꼭 좋다고만 볼수는 없는데, 기호는 문학적 장치라고 할수 있고 따라서 영화를 지나치게 문학적으로 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4
오대수가 학교에서 벌어졌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장면이다. 현재와 과거의 오대수가 서로 교차하여 보여지는데, 영상 전체를 주로 핸드헬드로 촬영하여 역동적인 느낌을 살렸으며, 특히 배경이 되는 계단은 마치 펜로즈의 계단처럼 혼란함을 가져다 주어 오대수의 심리를 미장센을 통해 보여주는, 미장센을 통해 등장인물의 심리를 표현하는 탁월한 지점이다.
#5
영화 후반부 오대수와 이우진이 조우하는 장면으로, 거울상이 사용되었다. 여기서 거울의 이미지는 실제 거울을 사용한 것이 아닌, CG로 구현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거울상은 큰 의미없이 등장인물들의 구도를 편리하게 잡거나 멋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본 작품에서는 이러한 수준을 뛰어 넘어 거울이 이용되고 있다. 거울이라는 매개체에 의해 오대수와 이우진은 연결되는데, 반대로 이는 두 사람이 거울에 의해 단절되어 있다고 볼수도 있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현재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거리감은 향후 시퀀스가 진행됨에 따라 좁혀지게 된다. 거울상을 사용하지 않고 본 장면을 연출했다면 롱샷으로 두 사람을 잡거나 분리 병치의 형태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여주는 방식을 쓸수 밖에 없었을텐데, 그러한 방식으로는 이 같이 두 사람의 거리감을 미학적으로 훌륭히 보여줄수 없었을것이다. 아울러 중간에 줌인으로 거울속의 오대수를 포착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줌인의 경로가 통상적이지 않고 특이한데, 곧바로 오대수를 향하는 경로가 아니라 줌인의 시작부와 후반부의 경로가 묘하게 어긋나는 선형의 경로를 따르고 있다. 이는 줌인의 역동성과 독특한 리듬감을 만들어주는 효과를 낸다.
“거울상의 평형적 반복”이라는 요소로서 본 시퀀스와, 미용실에서의 시퀀스, 그리고 오대수의 회상씬에서 이우진의 누나가 손거울을 사용하는 장면을 함께 묶어 영상 미학적으로 의미있게 보는 견해도 있는것 같다(예를 들면 구스타보 메르카보 저서 “필름메이커의 눈” 등). 사견으로 세 시퀀스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므로(미용실 시퀀스는 통상적인 거울상의 사용으로서 본 시퀀스와 달리 격이 떨어진다, 그리고 면적이 매우 작은 손거울을 사용한 씬은 그 효과와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이 같은 해석은 과장되고 무리한 해석이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