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차기 총선 출마 여부가 화두가 되고 있는데, 그의 정치권 도전은 단지 타이밍의 문제였을뿐이지 오래전 — 아마도 청와대 입성시부터 — 이미 기정사실이 된것이라봐도 무방했을 문제이다. 이 글에서는 그의 공직자로서의 가치와 행보에 대해 짧게 예측하는 내용을 담겠다.
딸 조민씨와 관련된 문제에 대하여
이 문제는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여당이든 야당이든 그 지지층 상관없이)의 이해와는 달리 정말로 복잡한 여러 논점을 담고 있는 문제인데, 문제를 보다 애매하게 만드는 논점중 하나가 바로 “법률 적용의 형식성”이다. 이것은 법 집행자가 자의로 법을 적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수 없이 법률이 기계적이고 형식적인 프로그램처럼 적용되는 경향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 법학적 논점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지면관계상 불가능하므로 간단한 예로 갈음하겠다.
수능시험날 핸드폰을 소지하면 “무조건” 부정행위로 간주되어 퇴장처리가 된다. 그런데 사실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꼭 컨닝할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법률은 위와 같이 대단히 형식적이고 기계적이며 일괄적으로 대상자를 모두 부정행위로 처리한다. 일종의 “프로그램”처럼 말이다. 이렇게 법률을 규정한 이유는 감독관이 일일히 핸드폰 소지자의 의사를 자의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법률은 이처럼 “융통성 없음”을 내재하고 있고, 만약 이 융통성 없음이 시민들의 관습적인 행동들에 내재한 “융통성”과 결합이 되면 어떤 “애매한 문제”가 발생된다. 조민씨 사건도 위와 같은 법률 본연이 가진 불가피한 특성이 “극단적”인 방향으로 발현된 사건이라 볼수 있다.
이야기가 복잡해졌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검찰수사가 대단히 “이례적으로” 조국 전 장관에게 집중된 것은 맞고, 이것은 실질적 수사공정성의 구현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재판에서 조국 전 정관 측이 주로 사실관계보다는 법률관계를 다투었다는 점에서 재판 과정에서 입증된 사실관계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보는게 타당하겠다 (이점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수천 페이지의 수사기록 전부를 일일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내가 이런 노력을 할필요는 없을것 같다). 그런데 검찰의 과잉 수사 덕분에 위에서 말한 “법률 적용의 형식성”이 증폭되었고, 자연스럽게 재판결과 자체가 맞긴 맞는것인데, 그것에 뭐라 말할수 없는 “애매함”이 우러나오게 된 것이다.
이같은 속사정을 아는 민주당 대부분의 관계자들은 — 심지어 문재인 전 대통령도 — 조국 전 장관에 대해, 지지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수도 없는 “애매한” 태도를 취할수 밖에 없게 된다. 어찌보면 흔치않는 상당히 웃긴 상황이라고 볼수도 있는데, 나는 여기까지가 조민씨 관련 재판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조국 전 장관의 공직자로서의 가치에 대하여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조국 전 장관이 차기 대통령감으로 여겨질정도로 인기가 많은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를 “전국 각 대학 교수들중에 몇명씩 있는, 흔히 볼수 있는 정도의 인물”로 본다. 즉, 도덕적으로 특별히 악하거나 선하지도 않은, 지적으로 특별히 뛰어나거나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는, 한마디로말해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는 “그냥 그런” 사람 정도로 보는 것이다.
먼저 그는 소셜미디어를 대단히 활발하게 이용하고 수많은 글들을 남겼는데, 대중의 관심을 받는것을 매우 좋아하고 의식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이 수많은 글 중에는 자신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 글들도 추후 발견되어 곤란함을 겪기도 하였다.
그의 글을 보면 대중을 상대로 하는 흔한 자칭 정치 논객들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보다 대중 친화적으로 다가가기 위함인지, “증오심”에 기반한 글들도 쓰고 있더라. 그가 출판하는 책들은 지지자를 위한 굿즈 목적의 깊이 없는 책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교수직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하지만 그의 출판 저서들 목록을 보면 나는 그가 형법학의 발전에 얼마나 진지한 학문적 노력을 하였는지 의심스럽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조국 전 장관이 예전에 자신의 트위터에 플라톤의 유명한 격언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댓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를 마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격언처럼 인용했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플라톤은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그는 가장 탁월한 한명의 철인이 다스리는 국가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이정도는 사회과학 분야의 교수라면 당연히 갖추어야할 기본적인 상식에 속한다. 그가 소셜미디어나 저서에 니체, 소크라테스등 많은 철학자의 어구 — 심지어 라틴어원문으로 –를 즐겨 인용하던데, 나는 그가 특별한 지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솔직히 그의 행동들이 “지적 허세” 정도로 느껴진다. 그의 정치관도 흔한 선진국 타령 정도의 국가주의 비슷한 정도로 보이고, 사실 자기만의 철학이 담긴 어떤 특별한 정치적 비전도 그는 보여준 적이 한번도 없다.
결론적으로 조국 전 장관은 도덕적 우위도, 지적 우위도 딱히 갖고 있다 보기는 힘든 사람인데, 단지 “애매하고 다소 황당한 피해자”가 되었다는 신분 하나만으로 정치 입문을 꿈꾸는 셈이 된다. 국회의원 자리가 피해자, 그것도 “애매한” 피해자에게 주어지는 보상같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그의 꿈이 약간은 몽상처럼 보인다. 이런 몽상에 취해 살아간다면 무엇보다 조국 전 장관 본인의 인생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조국 전 장관의 미래 행보와 기타 예측
조국 전 장관은 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서든 총선에 나가려 할 것이다. 그는 대중의 사랑에 관심이 많은 성격이고 정치적 야망도 가진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앞서 말했었던 “애매함”과 이재명 대표의 미래 경쟁자가 될 가능성, 그리고 선거전략상의 불이익 때문에 그를 전혀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적당한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