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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없이도 사는 영화의 표현 형식
영화의 표현 형식(방식, 방법)은 영화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여느 예술 분야와 마찬가지로 영화의 표현도 어떠한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완전히 자유로운 방식으로 가능합니다. 변기 하나를 갤러리에 가져다 놓고 예술 작품이라고 한다던지, 점하나 찍은 낙서같은 그림을 보신적 있지요? 그것과 비슷한 겁니다. 결국 영화의 표현 형식은 법 없이 산다고 볼수 있겠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영화를 위한 선>이라는 단편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8분 분량의 텅 빈 공필름을 잘라 놓은 것입니다. 상영하면 하얀색 바탕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가끔식 지지직 거리는 노이즈 비슷한 것만 보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에 만들수 있는 작품이지요. 핸드폰으로 8분동안 흰종이를 찍으면 위 백남준의 영화와 거의 똑같습니다.
이거 혹시 백남준 작가가 사기 치는거 아닐까요? “애이~ 백남준이 누군데 설마 그러겠어”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지난 2편에서 제가 말한 “영화 감독을 절대 신성하게 보지 말라”는 조언을 까먹으신겁니다. 백남준 작가도 인간인데 바쁘다보면 작품이고 나발이고 귀찮아서 대충 만들어 놓고 제목만 그럴싸하게 지어놓을수도 있는겁니다. 어짜피 그래도 사람들이 뭔가 깊은 뜻이 있겠지 하고 우러러 볼꺼거든요. 우리는 영화감독이 아무리 유명한 거장이라고 해도 의심의 눈초리를 절대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일단 결론만 말하면, 제 생각에는 백남준 작가가 사기 치는 것은 아닌거 같고 위 작품은 꽤나 일리가 있는 그럴듯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위 작품은 선불교의 “선(zen)”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영화라는 매체와 연관지어서 설명하고 있는 작품인데,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혹시 작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제가 예전에 써놓은 짧은 감상문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 (링크)
아무튼 위 작품은 영화의 형식에 제한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하나의 극단적 사례가 되겠습니다. 저정도 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영화들이 기존에 볼수 없었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화속 배우가 갑자기 관객을 향해 말을 건다던지, 음악이 잘 나오다가 갑자기 뚝 끊긴다던지, 연극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아 촬영한다던지 등등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지요.
기술과 예술의 중첩지대에 위치한 영화의 형식
영화의 표현 형식의 또다른 특징은 이것이 단순히 예술만이 아닌 기술의 분야이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카메라를 비롯하여 녹음기, 조명장치등 여러 기계장치를 도구로 사용하여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영화의 형식은 예술과 기술의 중첩지대에 위치하게 됩니다.
영화감독들은 대게의 경우는 기술자라기 보다는 예술가에 가까운 개성을 가졌기 때문에 영화 장비들에 대한 기술적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카메라 조작 기술이라던지, 컴퓨터 편집 기술, 녹음장비 운영법 같은 것에 대해서 아주 잘 알지는 못하는거지요. 따라서 이런 작업들은 대게 별도의 테크니션들에게 맞깁니다. 촬영감독, 편집담당들을 따로 두는거죠.
제가 본 어느 영화관련 책은 거의 공학에 가깝게 빛의 파장이라던지, 녹음시 음파의 모습과 여러 수식 같은 것들이 서술되어 있더군요. 이렇게 영화의 기술영역쪽으로 갈때까지 가면 공학수준까지 가게 됩니다. 일단 우리의 목적상 여러분(관객)들은 지나치게 기술 영역까지 관심을 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영화 기술에 특별히 관심이 가고 흥미롭다는 분이 계시다면 그 쪽으로 파고 드는 것은 아주 좋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대단한 촬영감독이 된다던지 할수도 있으니까요.😆
영화의 표현 형식이 이처럼 기술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의 발전에 따라 다양한 표현 형식도 등장하게 됩니다. 아이맥스나 3D영화 포맷에 맞추어 새로운 영상 촬영 테크닉이 개발된다던지, 드론이 등장하니 그에 맞추어 다양한 항공샷 촬영이 시도된다던지 하는거죠. 아마도 미래에 3차원홀로그램영사기 같은 것이 발명되면 그에 맞추어 새로운 촬영법이 등장하고, 완벽한 향기분사기 같은 것이 개발되면 영화향기학 같은 새로운 학문도 생길겁니다.
기본적인 영화/영상 문법 공부 방법
이렇게 영화의 형식이 완전히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소위 말하는 “영화(영상)의 문법”이라는 기본적이고 관습적인, 형식의 패턴이 있습니다. 영어를 말할때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문장을 만들수 있음에도 우리가 영어 공부를 할때는 영문법을 공부합니다. 영어 랩 가사나 시 같은 것을 쓸때는 문법이 자주 파괴되지만 어쨋든 “영문법”이란 것이 존재하긴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이야기 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의 문법을 공부할 필요가 있겠는데, 정말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면 여러분은 이 영화의 문법을 이미 거의 완벽하게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공부도 안했는데 어찌 이미 다 알고 있단 소릴까요?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여러분이 한국어를 공부하는 상황과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따로 한국어 문법을 공부안해도 저절로 한국어 문법에 잘 맞추어 말을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렸을때 부터 부모님을 비롯하여 주위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동적으로 국문법을 습득했거든요.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어렸을때 부터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영상물들을 보면서 이미 기본적인 영상 문법은 전부 체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운 소설책을 읽을때 도대체 뭔소리인지 그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간에 최소한 뭔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인식할수 있듯이, 꽤나 난해하게 보이는 예술 영화도 그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눈으로 뭔일이 일어나는건지는 인식할수 있습니다. 이 “인식”할수 있다는 것이 여러분이 영상 문법을 다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영상물을 태어나서 단한번도 보지 못한 원시인에게 영화를 틀어주면 영화속에서 벌어지는 상황 자체를 잘 이해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이 영상 문법이라는 것이 본래 “인간 친화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애당초 영화감독이나 영화학자들은 이 영상 문법을 인간이 되도록이면 쉽게 이해하고 느낄수 있도록 개발합니다. “내 영화는 아무도 이해 못해서 영화관에 파리가 날렸으면 좋겠어” 이러는 영화감독은 많지 않을테니 당연한 소리입니다. 결국, 여러분의 심리구조를 잘 반영하여 만들어진 영상 문법이니, 여러분 모두 딱히 별도의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아주 어렵지는 않게 영화를 보면서 저절로 습득할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영상 문법중 하나로 “히치콕의 법칙”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 감독 히치콕이 개발했다고 알려져 있지요. 이것이 뭐냐면 간단히 말해 “중요한 것은 크게 보여줘라” 입니다.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폭탄을 클로우즈업해서 제일 크게 보여줘야지 쓸데없이 근처에 지나가는 고양이가 더 크게 나오거나 하면 안된다는 소리지요. 그런데 사실 이건 너무나 당연한 소립니다. 설마하니 중요한 것을 개미 눈꼽만하게 보여줄까요? 히치콕의 위 법칙이란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제 생각에는 이것을 히치콕이 처음 개발했다고 보기에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수천년전 미술에서부터 중요한 것을 강조하고 크게 그리는 기법은 있어 왔거든요.
이처럼 대부분의 영상 문법은 여러분의 상식과 본능을 바탕으로 주의깊게만 관찰한다면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해석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저는 미리부터 영상 문법에 관련된 책을 공부하기보다는 먼저 영화를 보면서 스스로의 힘만으로 영상을 해석해본후, 충분히 숙달이 되었다면 부족한 부분을 책등을 통해 보충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면서 좀 특이한 장면이 나온다 싶으면, — 예를 들어 카메라를 굉장히 심하게 흔들어서 촬영이 되었다면 — 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하세요. “왜 하필 감독은 저렇게 찍었을까? 다르게 찍을수도 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본후 다시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다르게 찍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저렇게 찍는게 충분히 효과적이고 최선인가?” 이런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분석해보면 재미있을겁니다.
이런식으로 여러 영화를 스스로 분석해보고 이 작업이 충분히 진행되었다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한계가 느껴지면서 다른 보충 자료를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길겁니다. 그때 책이나 기타 자료를 보는 것입니다. 이들 자료에 대한 이야기는 본 연재글 후반부에서 다시 자세하게 하겠습니다. 아울러 제가 작은 유튜브 채널을 하나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 “좋은 영상의 사례”라는 카테고리로 영상과 블로그 글을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이것을 참고하셔도 괜찮을 것 같군요. 🎬 (유튜브 주소 : https://www.youtube.com/@dayzart_official )
다음편에서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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