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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생각들은 평범하다?
전편에서는 영화의 생각(메세지, 주제)들이 사실은 별볼일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진짜 그런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아래는 제가 “AFI(미국 영화 연구소) 선정 100대 영화 리스트” 중 눈에 띄는대로 세 개를 뽑아 그 영화들이 가진 주제들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전쟁은 비극적인 것이다.”
“친구와의 우정은 소중한 것이다.”
“불륜은 아름답다.”
여러분 중 위 주제들을 읽고,
“헐~ 대박! 전쟁이 비극적이라고? 난 전쟁이 신나고 짜릿한 일인줄 알았지 모얌. 진작에 알켜주지 그랬어?”
“친구와의 우정이라니? 난 첨 듣는 소린데.. 우정이 뭐야? 먹는건가?? 우걱우걱”
뭐 이런식으로 생각하는 분들은 한명도 없을 겁니다. 아! 근데 마지막 주제가 좀 특이해보인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불륜이 아름답다니 참 오묘한 소리군” 이러면서 말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이 잘 모르셔서 그렇지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방방곳곳에선 수많은 남녀들이 불륜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답니다. 단지 겉으로 말을 안할 뿐인거지요. 그래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속담(?)도 나온거랍니다. 따라서 마지막 주제도 딱히 참신한 생각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러분은 제 주장에 확신이 안갈겁니다. 제 주장을 보다 분명히 느끼려면 영화만 따져서는 안되고, 이른바 “영화의 경쟁자”들의 생각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래와 같이 몇분을 모셔왔습니다.
과학자 갈릴레이 –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 주위를 도는 하찮은 행성의 하나일뿐”
철학자 데카르트 – “네 눈 앞에 지금 보이는 컵이 정말로 존재하는거라고 확신할수는 없다”
수학자 리만 – “삼각형의 세 각의 합이 180도가 아닌 경우도 있다”
우와 정말 쇼킹하네요! 세 생각들 모두 발표 당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생각들입니다. 심지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두번째와 세번째 생각에 여전히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들 생각은 모두 사실로 “증명”된 것들입니다. 막연하게 상상에 그친 것들이 아니지요.
어떤가요? 이제 제 주장이 좀 분명하게 느껴지나요?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우리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면서 둘이 손잡고 제 멱살을 잡으러 찾아올꺼 같은 두려움이 살짝 듭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물론 저는 영화라는 예술을 비하하려고 이런말을 하는게 아닙니다. 아래부터 설명할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좀 과장을 섞어 이야기한거죠.😊
신성한 자세를 버리자
그렇다면 영화의 생각들이 이렇게 평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영화를 만드는 창작자들, 이를테면 감독이나 각본가들이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영화는 아인슈타인이나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같이 인류 지성의 빛나는 별들과 같은 사람들이 만드는게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특별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창작자들도 아주 특별난 생각은 하지 못하는게 당연합니다.
두번째로 영화가 가진 매체의 특성 때문입니다. 영화는 세상 모든 생각의 방식을 자유자재로 담는 만능 도깨비 방망이 같은 매체가 아닙니다. 앞으로 저와 함께 영화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텐데 영화라는 수단은 여러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영화로 표현한다고 가정합시다. 아마 무지하게 어려울 겁니다. 사실 이런 도전은 애당초 할 필요도 없지요. 그냥 백지에 수식으로 적으면 되니까요. 이런 수학적인 생각을 표현하기에 영화는 별로 좋은 매체가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를 관람하는 여러분 입장에서는 영화와 영화 감독에 대한 “신성한 자세”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특정한 거장 감독이나 걸작에 대하여 지나치게 신성한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에는 인간 영혼의 순수한 결정체가 녹아들어가 있는 것 같아! 그의 작품 <거울>을 볼때면 나는 내면의 영혼이 신과 만나는 그 순간을 느낀다니깐!” 뭐 대충 이런식인거죠. 느낌이 오시나요?
영화뿐만이 아니라 어떠한 생각이나 사람에 대해 신성하고 맹목적인 눈길로 바라보게 되면, 자유로운 비판을 할 수 없게 되어 결과적으로 대단히 해롭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영화를 무시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영화에 대하여 적당하고 알맞은 정도의 존경심을 갖는게 좋겠다는 말이지요.😉
내용의 대단함과 작품의 대단함의 관계
어쨋든 영화의 대단함은 주로 생각의 내용보다는 그것의 표현 형식에서 우러나오게 됩니다. 그렇다고 내용에 대해 아얘 무시할수는 없으니 영화의 내용과 관련된 중요한점 두가지만 더 짚어보고 다음으로 형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아래는 제가 상상해본 두가지 가상의 영화입니다.
A작품: 미국과 중국의 충돌로 세계3차대전이 일어나기 일보 직전 한국의 대통령은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외교전에 뛰어든다. 인류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렸다!!
B작품: 시골 초등학교 3학년 여학생 정귀욤은 친구 김수저의 아이폰이 너무 갖고 싶은 나머지 몰래 자신의 갤럭시폰을 김수저의 아이폰과 맞바꾼다. 사실을 알게된 김수저는 정귀욤의 머리끄댕이를 잡고 난동을 부리는데..
여러분은 두 작품을 볼때 어느 작품이 더 좋은 작품으로 보이시나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유사한 경우에 A가 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A작품의 사회 비판적 메세지가 강대국 사이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뭐 이런식으로 느끼는거죠.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A작품이 “세계평화”, “민주주의”, “인류의 미래” 와 같은 대단하고 스케일이 큰 내용을 담고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반면 B작품은 애들이 핸드폰 때문에 싸운 이야기라 시시해 보입니다. 그러나 A작품은 높은 확률로 졸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한번 살펴볼까요?😆
먼저 A작품의 경우 영화 창작자가 영화가 다룰 주제에 대해 깊게 알기가 어렵습니다. A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미-중의 정치 역학적 관계에 대해 깊게 이해한후에 한국 대통령의 역할과 업무 형태, 그리고 세계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이해해야 합니다. 이들중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이 없습니다. 여기서는 “민주주의”에 대해서만 간단히 따져보도록 하지요.
우리나라 국민중에 “민주주의”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정치인, 일반 국민을 막론하고 다들 여기저기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으니 말이죠. 근데 정말로 다들 잘 알고 있는 걸까요? 사실 전 민주주의란 개념이 너무 어려워서 위와 같은 분들을 보면 어찌 저렇게 잘 아는건지 좀 신기하기도 합니다.
A: 민주주의가 대체 뭔가요?
B: 님 바보임? “민.주.” 국민이 주인이다! 헌법 1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못봤어?A: 전 길거리에 신호등 하나 내 맘대로 못 옮기는걸요. 내가 주인인데 왜 내 맘대로 못하나요?
B: 하이고 답답하기는! 그건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뽑으면 대통령이 대신 결정하는거야! 대의 민주주의 몰라? 국민이 대통령을 뽑았으니까 국민이 주인이지!A: 그럼 만약 제가 뽑은 사람이 대통령이 안되면 전 주인이 아닌건가요? 국민들 생각이 다들 다를텐데, 모두 주인이라는게 가능한가요?
B: 그래서 다수결의 원칙이라는게 있는거 아냐? 다수의 말에 따르는거지! 억울하면 다수에 속하려고 노력을 해! 노력을!ㅋㅋA: 근데 다수에 속한다고해도 대통령하고 전화도 못하고 카톡도 못하고 대통령하고 말한마디 못하는데 이런 주인이 어딨어요?
B: 🤔A: 다수든 소수든 어느쪽이든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는데 왜 나보고 대한민국의 주인이라 하는겁니까? 완전 엉터리구만!
B: 🤯🤯🤯
민주주의에 대해 토론하는 A, B 두사람의 대화를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왜 국민이 주인이라는 건지 정말 미스테리하지요? 이렇게 민주주의 하나만 따져보아도 굉장히 애매모호하고 어려운 개념이라는 것을 알수 있지요. 우리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 많은 “추상적” 개념들은 사실 정확히 알고 있는 경우가 드뭅니다. 영화 감독도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인지라 이러한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당연히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추상적이고 난해한 개념들을 사용해 영화를 만들게 되면 좋은 작품이 나오기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B작품의 경우는 훨씬 쉽습니다. 어렸을적 남의 좋은 물건을 보고 탐을 냈던 기억은 누구나 있을테니까요 (비록 훔치진 않았겠지만). 따라서 이 경우에 영화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살려 진심을 담아 영화를 만들수 있습니다. 영화가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깊이가 있고 실감이 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여기서 제가 계속 “확률”이라 말하는 것은, 꼭 거창한 주제라고 반드시 실패하고 소박한 주제라고 성공하는건 또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여러 변수가 작용합니다.).
여기서 잠깐! 눈치가 빠르신 분이라면 알아차렸을텐데, 사실 A작품과 B작품은 같은 소리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강대국 간의 전쟁도 “탐욕”의 결과고, 초등학생의 도둑질도 “탐욕”의 결과입니다. 큰 차원에서 보면 결국 두 영화는 같은 생각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겁니다. 따라서 만약 B작품을 제대로 잘 만든다면 어쩌면 어느 영화 평론가로부터 다음과 같은 호평을 받을수도 있겠습니다. — “인간 본연의 욕망이란 감정을 초등학생들의 싸움을 통해 표현한 한편의 잘 만들어진 우화”.
우리는 지금 영화의 내용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여기서 영화의 형식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튀어나오네요. B작품은 “전쟁”에 대해 전혀 묘사하지 않고서도 “전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꼭 그 무언가를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것이 영화의 형식이 가진 묘미중 하나이지요.😊
다음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럼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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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 읽고 가요!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