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
홍상수, 그의 영화들은 개개의 영화가 모여 전체가 하나의 작품 세계를 이룬다. 이 때문에 그 영화가 그 영화 같은 지루함을 주는 것도 사실인데, “풀잎들”은 홍상수의 작품들 중에서도 약간 색다른 면이 있는 소품이다.
#2
이 영화는 “죽음”과 “사랑”을 주제로, 죽음이란 사건에 접하고 있는 여러 인간군상의 모습들을 그리고 있다. 어짜피 죽어 없어질 것을 아둥바둥한다는 김민희의 조소어린 나레이션처럼, 등장인물들 앞에 놓여진 죽음에 대응하는 그들의 사랑은 모두 빈약하고 공허하다. 영화 제목에서의 풀잎들은 싱그러운 의미에서의 풀잎이 아닌 사실은 작은 잡초들에 불과한 것이다.
#3
홍상수 영화에서의 배우들은 모두 소품에 불과하다. 하나의 물건처럼 모두 그의 개성을 잃고 감독의 철학을 전달하는 객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한 영화 속에서 그 배우가 그 배우같은, 심지어 영화를 넘나들며 각각의 배우들은 서로 동질화되어 사라지고, 종국에는 감독인 홍상수만 남게 된다.
#4
홍상수 영화에서의 대사들이 언뜻 사실주의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해다.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의 현실세계속 대화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수 있다. 상대방의 말을 반복하여 경어체로 읇는 대사는 충분히 연극적이며, 과장되어 있다. 홍상수 영화의 이러한 일반적인 특징은 이 영화에서 특별히 부각되어 등장하는데, 이유영과 김명수의 말다툼 장면이 그것이다.
#5
홍상수 영화의 형식적 특성으로 대표적인 것은 “차이와 반복”이다. 유사한 장면을 반복하되, 미묘한 차이를 두어 인지적으로 낯설게 하여 관객을 주목시키고 나름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이 같은 특징 역시 이 영화에서 강조되어 등장한다. 김새벽이 계단을 반복하여 오르내리는 장면에서 반복은 단순한 반복을 넘어 강박적 수준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