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평론
영화 전체가 남녀 주인공 두 인물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각 인물들의 본성이 양파 껍질을 천천히 벗기듯 점진적으로 보여진다. 벌어지는 사건들이 인물의 묘사에 효과적으로 기여함은 물론이고, 홍상수 감독 특유의 “차이와 반복”이라는 테크닉이 잘 살아 있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남성은 유아적 자아를, 여성은 여성 특유의 모성적인 자아를 상징한다. 먼저 극중 정보석은 유아적으로 퇴행된 행동을 보이는 여러가지 병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이다. 우선 영화 초반부 호텔에서의 관찰씬(아마도 몰래 카메라가 있나 찾는 모습인듯 하다), 살충제를 화장실에 심하게 뿌리는 장면으로 보아 그가 강박증적인 인물임을 알수 있다. 이러한 강박적 모습은 홍상수 감독의 초기 영화(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등)에서 몇차례 등장한다. 다만 그의 영화에서 이같은 병적 특성의 묘사는 단편적인 행동 제시에 머무른다. 실제로 전형적인 강박장애 환자는 그 병적 특성이 생활 전반에 미치기 마련인데, 이런 사실감 있는 묘사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다. 또한 정보석은 일견 예의 바르고 유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공격성과 성적 욕망으로 넘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은근히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려 들고, 극중 이은주의 젖가슴을 아기처럼 빠는 행동등을 보면 그가 유아적으로 퇴행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점은 아래에서 설명할 이은주가 갖는 의미와 관계되어 “모성 회귀적”이란 특성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극중 이은주란 캐릭터는 그가 성경험이 없는 처녀라는 사실과 상기 정보석이 갖는 의미와 관계되어, “성녀”이자 “모성”을 상징하게 된다. 따라서 정보석과 이은주의 성관계는 근친 상간적 의미를 내포하게 되고, 이와 함께 이은주의 오빠와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근친적인 장면들을 감안한다면, “정신분석학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도 논의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갖는 유사과학적인 모습과 그것의 무의미함 때문에 이 같은 종류의 해석은 지양하고 싶다. 즉, 정보석이란 캐릭터가 갖는 유아성과 모성에 대한 갈망에 해석을 국한 시키는것으로 충분하다 보는 것이다.
정보석은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이라 말한다. 이 시기의 홍상수 영화에서 남자들은 반복적으로 진심이라는 말을 한다. 사랑에서의 진심은 무엇인가? 진심과 진심 아님을 가르는 기준은 대체 뭔가? 그에 앞서 왜 그런 진심의 여부를 갈라야 할까? 그의 영화들 속에서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해답은 없지만, 어쨋든 감독은 그의 영화 전체에 걸쳐 이루어 놓은 탐구 그 자체를 해답에 갈음하여 관객에게 내놓고 있다.
2.좋은 영상의 사례
#1
홍상수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차이와 반복”의 테크닉이 잘 살아있는 장면이다. 동일한 한가지 사건을 향한, 두명의 인물이 바라보는 시각을, 그것의 차이를 반영하여 반복적으로 보여줌으로서, 각각의 인물이 갖는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을 선명히 드러나게 하는 기법이다. 여기서는 첫 시퀀스가 등장한후 대략 한 시간이 지난후 두번째 시퀀스가 등장하는 것임에 유의하자.
첫 시퀀스와는 달리 두번째 시퀀스에서는 정보석의 운전기사와 그에게 돈을 주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는 정보석의 재력을 묘사하는 부분인데, 정보석과 이은주 둘중 하나는 두번째 시퀀스에서 묘사된 것처럼 정보석의 재력을 매우 인상적으로 인식했다는 말이 된다. 상식적으로는 두번째가 가난한 이은주의 기억이라고 볼수 있겠지만, 꼭 그렇게 해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어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데, 어느쪽이 누구의 기억인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고 심지어 각각의 파트가 한사람만의 기억인지 아니면 두사람의 기억이 섞인것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두번째 시퀀스가 정보석의 기억이고 그가 자기 자신의 재력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한 것이다.
#2
두번째 장면은 흑백 영상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있는 장면이다. 에릭 로메르 감독은 흑백 영상의 사용과 관련하여, 피사체의 컬러가 단조로워 흑백으로 충분히 담을수 있는 경우에 흑백 영상을 사용한다는, 마치 “경제성의 원리”에 따르는듯한 발언을 한적이 있는데, 나는 여기에 동의할수가 없다. 흑백영상은 어떤식으로든 피사체를 왜곡할수밖에 없으므로 흑백영상이 피사체를 그대로 담되, 그 정보량만이 양적으로 적어진다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진 로메르의 주장은 납득하기 힘든것이다.
따라서 흑백의 왜곡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 줄 경우 외에는 특별히 컬러 대신 흑백으로 촬영할 이유는 없는것이다. 몇가지 이익을 생각해본다면, 우선 건강하지 못한(?) 이익으로서 “이 영화는 무언가 예술적인 영화다”라는 과시적인 느낌을 줄수 있다는 점과 영상의 품질이 떨어지는 경우 그것을 가려줄수 있다는 점을 들수 있다.
진지하게 따져볼만한 보다 바람직하고 건강한 이익으로서는, 흑백이라는 색상 자체가 서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전달할수 있는 경우와 미학적으로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다. 본 영상은 이 두가지 이익을 충족하고 있는 장면이다. 우선 이 영화 전체는 두 사람의 과거의 기억을 그리고 있는데, 흑백 영상은 이것이 과거의 아련한 기억임을 직접 암시해 준다. 그리고 본 장면은 흑백의 왜곡이 가져오는 영상적인 아름다움이 잘 표현된 장면인데, 등장인물들의 배경으로 보이는 낙서된 벽이 마치 유화처럼 느껴져 아름답다. 흑백의 왜곡이 가져온 결과인데, 이 장면을 컬러로 찍었다면 동일한 느낌이 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