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홍상수 감독 본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의 예술론과 인생관을 영화속 소설가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모든 예술은 그것을 창작한 예술가의 사상이 담겨지기 마련이고 홍상수 감독의 그동안의 모든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직접적”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담으려 의도했다는 점에서 그간의 작품들과는 차별점이 있다. 아울러 그의 영화는 사실 애뜻한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던 경우가 많았는데 이 작품은 드물게 그러한 감정선을 건드리는 영화이기도 하다. 일상의 사건을 담백하게 담는 정도가 더욱 뚜렷해진 작품이며 서사의 일상성이 더욱 강해졌다. 소소한 사건들을 잘 연결하여, 견련성이 잘 유지된채 스토리가 만들어 지고 있다.
영화는 크게 두가지의 서로 다른 주제를 산발적인 형태로 다루고 있다. 먼저 작은 주제 하나는 “언어에 대한 탐구”이다. 이는 홍상수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빈도 높은 주제이다. 극중 이혜영은 서점에서 수화를 배우는데, 이것은 언어에 대한 천착이 이어지는 것이다. 수화는 음성이나 문자가 아니라 행동 언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자연어와 다르다. 홍상수 감독은 이점을 포착한 듯하며 나름 재미있는 아이디어이긴 하다. 하지만 수화 역시 그 형식이 다를 뿐이지 그 실질은 “언어 중추”, 즉 이성을 이용한 의사소통 체계라는 점에서 사실상 수화나 음성언어나 동일한 것이다. 다시 말해 수화는 무용과는 다른 것이다. 따라서 수화가 “언어의 한계”와 관련하여 특별히 어떠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밖에 이혜영은 여러 대화속에서 “맑다” 라던지, “아깝다”와 같은 단어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품는데, 이들 역시 “언어의 한계”에 대하여 감독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의 더 큰 주제는 소설가를 통해 말해지는 “홍상수 본인의 예술론”이다. 영화에서는 크게 세가지의 주장이 소개된다. “지적 진실성, 우연성, 서사의 역할”이 그것이다. “예술에 있어서의 지적진실성”은 돈이나 명성이 아닌 작품 자체만을 위한 진실된 흥미와 열정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과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과장된 감정 역시 진실과는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우연성”은 누벨바그 사조에서의 그것을 말한다. 이혜영은 영화속에서 배우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인간을 카메라 앞에 두고 온전히 기록한다는 발상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은 연기가 아닌 진짜를 담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다큐멘터리는 아니다. 왜냐하면 어찌되었듯 서사라는 가상의 틈바구나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사가 진짜를 방해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누벨바그식의 우연성은 사실 배우라는 영화의 구성요소를 조작함으로서 “허위”의 양을 조절하여 진짜와 가짜의 절묘한 균형점을 찾는다는 논리이다. 이 논리가 정말로 실현될수 있는 것인지, 그 결과가 얼마나 의미있는 것인지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영화가 말하는 예술론의 마지막은 “서사의 역할”이다. 이 역시 누벨바그의 전통에 따르는 것인데, 작위적이고 강한 서사를 지양하는 태도를 주장한다. 이에 대하여 기주봉은 스토리가 강력하게 끄는 힘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한다. 이에 대해 홍상수 감독은 김민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변호한다. 김민희는 이혜영의 지극히 평범한 가상의 스토리를 듣고, 그 일이 실제로 자기에게 있었던 일이라며 놀라워 한다. 이처럼 평범하고 일상적인 스토리는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일어날수 있는 일들이며, 따라서 관객에게 친밀감과 현실감을 느끼게 해준다. 이처럼 관객에게 더 밀접하게 응집될수 있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더 큰 힘을 발휘하여 영화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홍상수 감독의 주장인 것이다.
여기까지가 영화가 말하는 감독 본인의 예술론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수가 있다. 이런 식으로 창작자 자신의 이야기가 직접적인 작품의 목표가 되는 것이 모든 예술 분야에서 자주 있는데, 이것이 창작자 이외의 타인에게도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결국 의미가 있고 없고는 창작자의 지극히 사밀한 이야기가 타인의 삶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지 여부에 달려있다. 그 이야기가 타인의 삶에도 충분히 영감을 줄수 있는 것이라면 의미있는 예술이 되겠지만, 그 영향이 단순히 창작자 개인에게만 머무른다면 개인적인 넉두리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본 <소설가의 영화>에서 진솔하게 밝혀진 감독의 이야기는 비단 예술가 뿐만 아니라 그밖의 모든이들의 삶에 있어서, 착상을 유도하는 역할을 충분히 할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의 예술론에 담긴 진실성과 자연스러움이라는 요소는 예술론을 넘어 일반적인 인생론으로서도 충분히 기능할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액자 소설식으로 이혜영이 찍은 영화의 단편이 등장한다. 이는 홍상수 감독의 배우 김민희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김민희에 대한 일종의 헌사인 것이다.
잘 읽었습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의 우연성은 앙드레브르통의 파리초현실주의의 우연성에 기반한 것인데 참고하시면 좀 더 좋은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네, 몰랐던 내용인데 귀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한가지 궁금한점이 있는데, 홍상수 감독이 말씀하신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를 의식적으로 참고했다는 말씀이신건지 아니면 비평상으로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말인지 궁금합니다. 쓰신 댓글상으로는 전자로 읽히는데 아무래도 후자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