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이를 위한 한줄 소개:
개별적인 사랑의 사례를 통해 보는 일반적인 인간의 편향에 대한 탐구
1.평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에서 가장 탁월한 작품중 하나이지만 그리 널리 알려지지는 않아 “숨겨진 수작”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이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연출 측면에서 그의 다른 영화들과 미묘하게 결을 달리한다.
친절하게도 주제를 제목에 그대로 녹여놓았는데, 이 영화는 “당신자신” 즉 인간의 본질적인 면과, “당신의 것” 즉, 본질 이외의 인간의 외면, 쉽게 말해 필수적이지 않은 껍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극중 이유영은 쌍둥이인지,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수없는 상태로 자신을 지인으로 생각하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고 다닌다. 홍상수 감독의 다른 작품들과 같이 이 영화도 뚜렷한 서사구조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소재의 강렬함과 신비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언뜻 분명한 이야기를 가진 것 처럼 느껴진다. 이유영은 극중에서 김주혁에게 “당신이 그렇게 보고 싶어서 그렇게 보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가진 인지적 편향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인데, 여기서 이유영이 쌍둥이, 혹은 쌍둥이스럽게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외형을 복사”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은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볼때 그 사람을, 일종의 모델이 되는 과거의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인용하여 판단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사귈때 그 사람에게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투영된다던지, 심지어 실존인물이 아닌 과거에 보았던 연예인과 같은 이상적인 모델이 투영되는 현상이 있다.
영화는 인간 고유의 일반적인 특성인 인지적 편향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사례를 통해 — 그것도 쌍둥이라는 신비스럽고 의외의 소재를 사용하여 —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지금 우리는 과거에 경험했던 인지적 복제물인 쌍둥이들과 만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유영은 쌍둥이일까 아니면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관객은 그녀의 행동을 보고 추단하려 들지만 쉽지않을 것이다. 왜냐면 영화는 애초에 쌍둥이인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적극적으로 이 신비롭게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의 일상인 이 세계에, 관객들이 직접 참여케하길 원하고 있을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큰 주제 사이로 몇가지 작은 생각들을 나열한다. 몇가지 인상적인 부분들을 살펴보면 먼저, 술을 자주 먹는 이유영은 김주혁과 절주를 하기로 약속한다. 사실 사람사이의 약속(여기서 약속은 법적 계약이 아닌 말그대로 인간관계에서의 약속이다) 만큼이나 무의미한 것이 없는데 특히나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연인 사이는 애정이란 감정으로 결속된 관계인데, 아닌 말로 약속을 그냥 깨버리면 어찌할 것인가? 애당초 처벌과 같은 강제 수단이 없는 만큼 감정이 깨지면 약속이란 것도 무의미해지는 법이다. 여기서 약속이란 것은 감정을 억지로 붙잡아 둘 언어로 된 상징적 장치에 불과하다. 사랑하는 사이에서 약속이란 수단이 등장하는 순간 그 관계는 저문다고 보는 것도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결혼이 계약(약속)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이 영화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바라 보는 “남성성”이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명시적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는 남자는 모두 “아기 아니면 늑대”라고 말하는데, 참으로 쉬우면서도 간결한 유형화가 아닐 수 없다. 자크 라캉의 말 “남자에게 있어 여자는 어머니가 아니라면 매춘부일수 밖에 없다”를 연상케 하지만 홍 감독의 표현이 훨씬 쉽고 재미있다. 이 말을 좀더 자세히 풀어보면 남성이란 “모성애로의 회귀와 성욕” 사이에서 와따 가따 하는 시계추 같은 것이라는 말이 된다. 이 두 유형은 홍상수 영화들에 등장하는 여러 남성들의 공통된 속성이기도 한데, 그 극단적인 모습이 <오 수정!>에서는 정보석이라는 하나의 캐릭터에 몰아 담아 표현된다.
한편 이 작품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단골 주제인 “진심과 언어의 허구성”은 계속 반복된다. 사랑이라는 진심, 이것이 중요하고 이것을 방해하는 그외의 것들, 그것은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우리의 관념들이다. 이 명제 자체는 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하는 홍상수 영화 속의 등장인물(주로 남자)들은 한없이 빈약하다. 참된 메세지가 빈약한 메신저에 의해 영화상에서 구현되는 셈인데, 이는 분명 의도적인 것이다.
이유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전부 아는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는 신비주의적인 비언어적 진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영화는 그러한 불가해한 것들을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일단 쉽게 풀고 넘어간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김주혁은 자신의 옛 연인과 똑같이 생긴 이유영에게 그동안 자신이 생각만 많았지 상대방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며 늬우치는 모습을 보인다. 즉 “당신자신”을 보지 못했다는 말인데, 사실 김주혁은 이 순간에도 이유영의 외형만 보고 옛 연인을 투영시켜 그녀를 따랐을 뿐이다. 그는 여전하며 변한 것이 없다.
2.좋은 영상의 사례
#1
김주혁이 이유영과 다툰후 그녀의 집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는 상황이다. 김주혁은 멀리서 이유영이 자신을 반기는 상상을 하는데, 다른 영화에서 흔히 그러하듯이 상상임을 확실히 구분지어주는 장치없이 현실과 상상을 뒤섞어 표현하고 있다. 홍상수 감독은 꿈, 상상, 과거의 기억등 의식작용을 실제 현실과 구분없이 표현하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이 기법의 의의는 꿈의 표현에 관한 다음 문서를 참고 : 링크 )
아울러 박찬욱 감독도 역시 상념을 현실과 뒤섞는 표현방식을 자주 사용하는데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에서 이 기법이 잘 활용되고 있다. (관련하여 다음 문서들을 참고 : 올드보이 링크, 헤어질 결심 링크)
#2
본 작품에서 철학적 사상을 영상화하는 두가지 방식을 찾을수 있다. 첫번째는 이처럼 등장인물의 대화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방식이다. 대사가 지나치게 직설적이거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설교식으로 흐르면 역효과가 날 것인데, 여기서는 그런 부작용없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아울러 단순히 하나의 사상을 가진 인물만을 등장시켜 대사를 읇게 되면 설교식으로 보일 위험이 있으므로 두가지 반대되는 사상을 가진 인물이 토론을 하는 형태로 연출되는 것이 더 낫다. 여기서는 김의성이 김주혁에 반대되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참고로 이렇게 토론 형태의 대사의 구성은 에릭 로메르 감독이 즐겨 사용하는 기법이다. (관련 하여 다음 문서를 참고 : 링크 )
#3
철학적 사상을 영상화하는 두번째 방식으로서, 영화의 주제가 되는 개념을 동일한 상황(혹은 사건)으로 만들어 영상으로 연출하는 방식이 있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개념에서 귀납적인 하나의 사례로 전환하는 것이며, 이 사례는 언어(대사)가 아닌 사건으로 구현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인간의 본질이 아닌 부수적인 것에 집착하는 편향”에 대한 것이다. 영상에서 이유영은 물가를 걷고 있는데 그녀의 다리만 보이는 상황이다. 이때 누군가 말을 거는데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이 영상의 앞서서 수 명의 남성이 등장하였기에 관객은 목소리만 듣고는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수 없다. 영화는 시간을 잠시 끌며 그의 얼굴을 계속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에 드러나는 유준상의 얼굴. 관객은 “아. 유준상이었구나!”하고 인식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정체를 그의 얼굴, 즉 외형이라는 본질적이지 않은 부수적인 요소를 가지고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얼굴(외형)만으로 유준상이 유준상이 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이같은 관객의 인식과정은 본 영화의 주제와 완전히 동일한 것이다.
#4
시간의 경과를 양초가 타서 줄어든 모습을 통해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긴 양초와 짧은 양초 두 쇼트를 오버레이해주어 구현되었다. 홍상수 감독은 대게 이런식으로 영상 테크닉을 활용하여 영화적 시간을 조작하는 연출은 하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 이 장면은 상당히 인공적이라 독특하다고 볼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