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2000년대 초반, 이제 막 졸업한 평범한 여고생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당대의 시대상을 잘 담아냈다는 장점을 서사의 중대한 결함이 모두 깎아 먹어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
영화의 큰 주제는 “청춘의 방황”인데, 이를 묘사하는데에는 두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하나는 특수한 사건을 제시하여 분명하게 그리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일반적인 분위기만을 전달하여 애매모호하게 그리는 것이다. 영화는 첫번째 방식을 택했으나 부실한 서사와 평면적인 캐릭터 묘사로 인하여 결과적으로는 위 두가지 방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꼴이 되버렸다.
이 영화가 그리는 인물들의 모습은 모두 피상적이고 식상하다. 여느 영화에서 볼수 있는 전형적이고 흔한 인물들의 패턴이 등장하는데,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인물을 대변하는 이요원과 이와 반대로 이상적인 인물상인 옥지영의 대립, 그리고 양자를 조율하는 역할인 배두나와 마지막으로 감초역을 하는 쌍둥이 자매들이 주요 인물들이다. 그런데 여기서 배두나와 옥지영을 빼고는 모두 이 두 사람을 뒷받침해주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소모적인 캐릭터에 불과하다. 이요원도, 쌍둥이 자매들도, 조연들로 등장하는 소아마비 청년과 옥지영의 조부모도 모두 그렇게 소모된 채 버려지게 된다.
서사적 결함에 대하여 말하자면, 먼저 옥지영의 집이 무너져 조부모가 죽는 사건과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작위적이고 억지스럽다. 옥지영은 해당 사건에서 어떤 죄목으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것인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현실에서 집이 무너지는 재난이 발생됐다고 가족이 형사 피의자가 되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가 제시하는 사건이 지나치게 상식에서 벗어나 황당한 느낌까지 줄 지경이다.
배두나는 왜 어째서 소아마비 청년을 좋아하는가? 이는 영화의 주제가 “청춘들의 인생 고난”이고 이 고난중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 고난”이니 그저 막연하게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소아마비라는 장애를 가진 가난한 시인을 등장시켰을 뿐이다. 한마디로 별생각 없이 “그냥 던져지는 식”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 청년의 퇴장도 역시 별다른 영화적 해결없이 “그냥 버리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심지어 영화의 핵심인물인 이요원 역시 영화적 해결이 되지 않은채 그냥 사라지는 황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상사의 통장을 잃어버리고 뭐가 어찌된 것일까? 이요원과 옥지영의 갈등은 이요원이 보낸 문자 하나로 정말 간단하게 해결된 것일까? 이요원의 삶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화는 아무런 해결도 하지 않은채 그냥 방치한채로 끝을 맺는다.
영화의 제목인 고양이는 “책임과 희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중요성에 비하여 이 역시도 간단하게 버려진다. 쌍둥이 자매들에게 떠맞겨지고 사라지는 이 고양이를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결국 영화가 청춘들의 방황에 대한 해결책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해외 출국”이다. 이는 마지막의 산뜻한 분위기와 “GOOD BYE”라는 자막으로 볼때 어떠한 열린 결말 따위가 아니라 해결책으로서 제시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해외에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한다고 좋게 봐줄수도 있겠지만 자꾸만 이들의 출국이 “해외로의 도피”로만 보이는것은 왜 일까? 영화가 이들의 출국을 긍정적인 희망으로 보이게 만드는 서사의 건설에 실패했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이 영화의 미덕은 장소와 소품의 이용 정도로 좁게 국한 되는데, 낙후된 공간을 상징하는 인천이란 장소와 당대에 막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했던 핸드폰이라는 소품이 영화에서 인상적으로 비추어진다. 특히 이 핸드폰은 사람간의 연결 뿐만 아니라 조악한 비프음을 이용하여 때로는 악기로도 사용되는 재미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좋은 작품이라고 볼수는 없는 이 영화가 신기하게도 시대를 흘러 지금은 또 다른 색다른 가치를 갖는 작품이 되었다. 유독 당시의 장소와 소품을 많이 담다보니 본의 아니게 영화는 당대의 생활양식을 간직한 추억의 아카이브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영화 제작 당시에는 이런 효과가 없었을 것이며 영화가 이런 의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관객과 함께 영화도 나이가 들어 다른 차원의 느낌을 주는 셈인데, 이런점에서 어쩌면 영화가 하나의 생명체라 불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마치 오래된 술처럼 숙성의 효과라는 재미난 효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던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