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평론
전쟁과 민족주의라는 개인이 저항하기 힘든 역사적 흐름 앞에 놓인 두 남녀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방점은 “사랑”이 아닌 “비극”에 찍혀야 한다. 양조위가 탕웨이를 갈망한 것은 아무도 믿을수 없게 된 자신의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함이며, 탕웨이가 양조위를 갈망한 것은 보호받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따라서 두 사람의 사랑은 진짜 사랑이 아니며, 그것은 삶의 고통을 피해 잠시나마 안주하고자 했던 임시적인 도피처인 것이다. 양조위는 탕웨이를 믿지 않고 버림으로써, 자신이 지켜줄 것이란 왕조위의 말을 믿고 알약을 먹지 않은 탕웨이는 총살 당함으로써 결국 이 도피처는 무너지게 된다.
영화는 일본 제국 보다는 오히려 중국 국민당 계열의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며 민족주의란 이데올로기의 허상에 대해 밝히고 그것을 비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민족의 자존이라는 대의를 위한 목적에 봉사하는 희생으로 보이는 영화속 대학생들의 저항 행위는 사실 전체주의적 집단에 대한 소속감의 발로이다. 이 소속은 엘리트 주의로서의 소속이며 나는 남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를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있는데,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많은 정치인들이 벌이는 기이한 행동들은 그들이 딱히 변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당초 젊은 시절부터 가져왔던 진실보다는 권력을 흠모하는 병적인 정신세계가 그 원인인 것이다. 영화속에서 대학생들이 일제에 대항하는 동기는 일제가 자유를 침해했다는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민족주의라는 또 다른 전체주의적인 망상과 권력에 대한 갈망에 기원한다. 대게의 경우 어느 국가에서나 민족주의는 이처럼 과장된 가치를 갖기 마련이다.
어쨋든 영화는 이러한 거창한 주제를 담고 있는데, 영화가 효과적으로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어 왠지 힘겨운 느낌이다. 주제가 아주 뚜렷하게 전달되지는 않으며 큰 주제사이에서 애매모호하게 갈팡질팡한 끝에 결국은 남녀간의 애처로운 사랑 이야기로 어쩔수 없이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형식적으로는 양조위와 탕웨이 두 사람의 가리워진 본심을 묘사하는 것이 주된 관건이 된다. 따라서 배우들의 연기와 벌어지는 사건으로 이를 관객에게 점진적으로 정교하게 보여줘야 하겠으나, 물론 이것은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서도 영화는 버거운 느낌을 주는데, 특히 영화 중반 이후의 상하이 파트부터는 감정표현이 균형을 잃고 지나치게 과속을 하게 된다. 일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라지만 삼년전과는 많이 다른 양조위의 과격한 행동은 설득력이 떨어져 보이며 갈등하는 탕웨이쪽 묘사도 썩 만족스럽게 되지는 않았다.
이 영화는 개봉당시 파격적인 섹스씬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섹스씬이 꼭 필요했는지도 논점이 될 것 같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영화의 제목이 말해주듯 원칙적으로 섹스는 이 영화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여성 스파이가 미인계로 유혹한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탕웨이가 성적으로 적극적인 유혹을 한다는 이야기 구조라야 섹스씬들이 설득력이 있겠으나 실제로 영화속에서 탕웨이는 첫 섹스씬에서는 강간을 당하는등 거의 수동적인 역할에 그칠 뿐이다. 사실 그녀가 미인계를 적극적으로 썼다기 보다는 오히려 양조위가 스스로 함정에 빠지는 것에 가깝다. 탕웨이는 침투를 위해 동료 남학생과 훈련(?)까지 하였는데 좀 허무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탕웨이가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주도하여 양조위를 유혹하는 구조였더라면 영화속 섹스씬들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2.좋은 영상의 사례
탕웨이가 양조위의 집에 잠입하여 부인들과 마작을 하는 장면이다. 스파이인 탕웨이는 정보를 캐내기 위해 부인들의 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우 긴장된 분위기(탕웨이의 입장에서)에서 마작이란 게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테이블의 인물은 모두 4명에 중간에 양조위가 잠시 들르는 아주 복잡한 상황이다. 이 모든 것을 효과적으로 영상화하기는 매우 어려운데, 이 영화는 이를 교과서적으로 아주 훌륭히 해내고 있다.
이 씬은 총 세개의 쇼트로 개념화 할수 있다. 탕웨이를 비추는 쇼트, 화자를 비추는 쇼트, 마작 플레이를 비추는 쇼트가 그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심이 되는것은 탕웨이를 비추는 쇼트이며, 영화는 이 쇼트를 기본 축으로 삼고 나머지 두 쇼트를 병렬로 구성하여 빠른 속도로 교대하며 보여준다. 말을 하는 화자를 비추고 그에 대한 탕웨이의 반응을 보여주고 적절한 시점에서 마작패를 클로우즈업 하거나 테이블 전체를 비추어 주위를 환기하는 식이다. 쇼트간의 이음이 속도감있고 감각적이며 등장인물의 심리를 유효적절하게 잘 표현한 좋은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