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평론
“도쿄!” 는 세 명의 감독의 단편 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이다. 일본이 아닌 프랑스와 한국의 감독들이 연출한 작품임에도 세 편의 영화가 대단히 일본스러운(?) 느낌이 든다. 이는 미장센과 배우가 주는 영향력을 방증하는 실험이라 할수도 있겠다. 이 글에서는 세 영화중에서 봉준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흔들리는 도쿄” 편을 다뤄보려 한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세계는 기본적으로 환타지에 근거한다. 즉, 사실주의라기 보다는 환타지를 통한 사실의 묘사에 가깝다. 따라서 그는 “환타지”를 명시적으로 표방한 이 “도쿄! 프로젝트”에 잘 어울리는 감독이다.
“여긴 정말 완벽해!” 란 피자 배달녀의 말처럼 잘 정돈된 주인공의 집은 그가 구축한 완벽한 세계를 상징하는데, 사실 이 세계는 외부와의 단절을 통해 만들어진 허위의 세계요, 외부인의 침입과 지진으로 상징되는 외적 요인으로 언제든 무너질수 있는 빈약한 세계이다. 이러한 허위의 완벽한 세계를 원하는 주인공은 완벽한 하나의 원리를 원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강박증 환자라고 볼수도 있다. 집을 나서는 주인공의 독백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피해 의식이라는 강박적 심리를 섬세히 보여준다.
영화는 도쿄 시민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되었다는 설정으로 위와 같은 주인공의 병적 심리가 단지 주인공만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병리적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요컨대, 원자적인 현대인 개개인의 고립은 실현 불가능한 “완벽한 세상”을 원하는 심리에서 비롯되고 이로 인해 역설적으로 개개인은 고립되고 개인의 고립은 사회적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 같은 고립을 깨는 동기는 사랑이 될수 밖에 없으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먼저 문을 나서는 과감한 “의지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 작품의 미덕은 영상 연출적 측면에서 두드러지는데, 미세 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이에 응하는 클로우즈업 위주의 장면이 그것이다. 아울러 간간히 삽입된 봉준호 특유의 재치있는 유머도 돋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전반부와는 달리 주인공이 집을 나서는 후반부 부터는 상당히 실망스럽다. 전형적인 용두사미형 작품이라 볼수 있겠는데, 문신의 “LOVE”를 누르는 마무리는 너무 유치하고 직설적이라 태만하다고 밖에 할수 없다.
2.좋은 영상의 사례
https://youtu.be/MyAZkvjsg8A
첫번째 씬은 전형적인 반복 영상으로, 무미건조하게 이루어지는 주인공의 일상이 일련의 동종의 영상(돈을 내고 배달품을 받는)과 효과음(문을 여닫는)을 반복적 배치를 통해 표현되고 있다. 여기서 동종의 재료가 알맞은 타이밍으로 반복됨으로서 관객에게 딱 들어맞는 리듬감을 주게 된다.
두번째 씬은 지진이 일어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데, 흔들리는 환경을 주변 사물의 움직임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천장에 걸려 있는 원숭이 모양의 인형이 특별히 주목을 끄는데, 이 인형은 지진의 흔들림의 표현과 아울러 원숭이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이 가져다 주는 코믹함과 상황 묘사, 그리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의도적으로 인형을 치고 지나감으로써 영상의 단조로움을 해결하고 사건의 여운을 계속 이어지게 하는 효과를 준다.
세번째 씬은 기절한 피자 배달녀의 상태를 관찰하는 주인공의 모습이다. 여자가 기절해 있다는 은밀한 상황이 전제된 상태에서의 주인공의 관찰 행위는 “성적 코드”를 묵시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된다. 주인공은 여자의 팔과 허벅지를 조심스래 관찰하는데, 카메라는 오랜시간 여자의 피부를 클로우즈업 한다. “피부의 상태”가 적나라하게 나올 정도의 근접촬영, 착용하고 있는 “가터밸트”, 이렇게 두 요소는 신체나 착용물에 대한 성적 욕망인 페티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