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아티스트 백남준이 1964년에 발표한 단편 실험영화이다. 빈 필름을 8분간 편집해 놓은 것이 영화의 전부인데, 필름이 갖고 있는 고유의 노이즈가 불규칙적으로 상영되는 것이 작품의 내용이다.
이 영화를 분석한다면 먼저 필연적으로 거시적인 논점 하나와 만나게 된다. 바로 “현대 미술의 극도의 추상화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가 그것이다. 쉽게 말해 갤러리에 변기를 놓아 두거나 백지 한장을 걸어 놓은 것을 예술로 볼수 있는지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사실 예술을 실재의 복사물로 보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인데,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위대한 것은 논문에서의 글자들의 조합 자체가 아니라 그의 생각 때문인 것처럼, 원칙적으로 예술의 의미도 예술가의 생각에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나 그 아무리 작가가 의도한 생각이 좋다 한들 예술의 형식이 그 생각을 제대로 표현해주지 못한다면, 즉 생각이 형식을 아득히 초월하여 “꿈보다 해몽”인 수준에 이른다면 제대로된 작품이라 보기 힘들 것이다. 이는 사실 예술의 표현력에 대한 일반론과 대동소이한 이야기다.
위와 같은 관점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척도가 만들어 진다. “예술가가 자신의 생각을 지적 진실성을 유지한채, 효과적인 형식을 이용하여 표현한다면 예술이 될수 있다”.
백남준의 이 작품은 어떠할까? 먼저 그가 단순히 대중의 관심을 얻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실된 자세로 창작활동을 한 것인지는 그의 일대기와 생애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일관성등을 살펴보면 추정해볼수가 있을 것이다.(나는 아직 백남준의 예술에 대해 충분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본 글에서는 이부분의 판단은 생략하겠다)
둘째로 이 작품이 목적한 아이디어와 그것의 형식과의 관계를 살펴야 하겠다. 이 작품의 주제는 제목과 같이 영화라는 매체에 존재하는 선(ZEN)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의 선은 일본 선불교의 관념적 이상향인데, “일상성”, “우연성”, “비언어성”을 특징으로 한다. 여기에 백남준이 평소 주목하고 있었던 “지루함”의 철학도 더해진 듯 하다. 이것은 인간은 인지적으로 지루함의 끝에 어떠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인데, 백남준은 아마도 지루함이라는 시간이 갖는 “계시적” 특성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상기의 주제들을 빈 필름이라는 형식으로 표현하였는데, 영화에 있어서 빈 필름은 일종의 “베이스”가 된다. 즉, 빈 필름은 영화에 있어서는 “평범한 일상”인 것이다. 무작위적으로 생성되는 노이즈는 영화에서의 “우연함” 그자체를 보여주고, 이 모든 것들은 물론 언어적이 아니라 지극히 비언어적인 이미지를 구성한다. 그리고 8분이라는 짧은 “절대적” 시간은 그 내용으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긴 시간으로 느껴지고 이 같은 지루함을 백남준은 관객에게 “계시”로서 던지는 것이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혹은 개념적으로 분석해보면 내가 제안한 척도를 충족하는 꽤나 일리가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상만사 모든 것이 그러하듯 예술의 기능적인 효능은 직접 그것을 감상한 결과 느껴지는 직관으로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영화를 보는 동안 백남준의 의도가 선명하지는 않지만 제법 느껴지는 수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