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악의 하루>등을 연출한 김종관 감독의 초단편 영화로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이기도 한 작품이다.짝사랑에 빠진 20대 여성의 심리를 카메라 작동법을 가르쳐 준다는 하나의 단편적 사건과 인물의 외부 묘사만으로 준수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큰 흠을 찾기 어려운, 단편 영화의 레퍼런스가 될 만한 작품이다.
일반론적으로 하나의 작품 전체는 그 작품의 부분의 합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 즉, 부분의 합이 전체와 동일하거나, 그에 못미쳐서는 좋은 작품이라고 할수 없다. 특히 본 작품과 같은 5분 내외의 초단편 영화에서는 이러한 측면이 두드러지게 문제가 되는데, 실제로 상당히 많은 단편 작품들이 장편에나 어울릴듯법한 하나의 완결된 전체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맞추어 억지로 우겨넣는 식으로 제작되고 있다. 반면 본 작품은 이러한 측면에서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는데, 짧은 분량의 부분적인 플롯만을 제시하여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영화 밖에서 이루어지는 전체의 완성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부분의 합이 전체를 초월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전체는 폴라로이드 카메라의 작동법을 가르쳐주는 한 남성과 그에 대한 여성의 반응만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특징적인 부분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는 다소 생소한 소품이 매개체로 사용되었다는 점, 영화가 끝나도록 남성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먼저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본 작품에서 두가지 효과를 거두는데, 첫째는 “사랑의 어려움”을 은유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 여성이 현재 풀어나가고 있는 사랑은 마치 폴라로이드 작동법처럼 어렵고 조심스럽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소품이 여성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는 메타포로서 기능하고 있다. 둘째는 “카메라”라는 지극히 기계적이고 차가운 소품 자체와 이것의 작동법에 대한 무심한 설명 과정이 여성의 감정과 대비되어 이 감정을 더욱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강조의 효과는 어떤 형이상학적이거나 추상적인것이 아니라, 스크린상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심리학적”인 것이다.
다음으로 영화가 짝사랑 상대방인 남성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에 대하여 살펴보자. 이것 역시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영화의 핵심인 여성의 반응에 온전히 집중하기 위해서다. 영화는 핸드헬드로 잡은 여성의 클로우즈업 쇼트를 중심으로 긴장감, 설레임, 몰입등 복합적인 사랑의 감정을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 남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불필요하게 관객의 주의가 분산돼버릴 것이다. 둘째는 남성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남성을 신비로운 대상으로 보이게 만들어 줄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감정은 영화속 여성이 갖는 사랑의 감정과 유사한 것이므로 관객을 스크린 속의 여성의 입장으로 유도한다고 볼수도 있겠다.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서 짧은 암전과 침묵등을 삽입하여 약한 긴장감을 조성한 상태에서 여성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실수로 잘못 조작하여 남성을 촬영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여기서 여성은 사실 실수로 남성을 촬영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남성의 모습을 어떻게든 간직하고 싶었고, 긴장한 상태에서 실수인척 셔터를 눌러봤지만 카메라는 빗나가고 만다. 영화는 끝까지 사랑이란 감정의 섬세한 묘사를 잊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