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1. 평론
영화는 바캉스 시기의 외로움이라는 개별적이고 표면적인 고독을 통해 인간 본연의 일반적이고 실존적인 고독에 대해 이야기한다. 즉, 델핀은 단순히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남자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영화가 단순히 한 여성의 연애사를 그리고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이 가진 “실존적 고독”은 자연(universe)의 우연성에 의해 성취되는 사랑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데, 영화 전체는 바로 이 “자연적 우연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델핀은 스페인 여행을 권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모험”은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고독을 극복할 생동감 넘치는 욕망의 충족은 반드시 모험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연”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이는 앙드레 지드가 주장했던 욕망의 충족에 대한 기회 같은 것이다). 그녀는 우연의 “기회”와 여러차례 조우 하지만(친구를 구하는 벽보를 보기도 하고, 친구의 단체 여행 제안도 받는다) 그냥 지나치게 된다. 휴가를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려 여러 노력을 해보지만 모두 의무감에서 나오는 형식적인 노력일뿐 노력을 할수록 더더욱 슬퍼만 진다. 결국 델핀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왠지 느낌이 좋은 남자를 만난다. 이는 한명의 남자와의 만남을 뛰어넘어 실존적 외로움을 극복할 그 순간과 조우한 것이다. 이 궁극적인 순간은 “녹색광선”이란 자연물을 통해 상징적으로 제시된다. 즉, 이 순간은 실재 현상 세계를 초월하는 궁극적인 지점과 접하는 것이며 영화는 이를 녹색광선이란 자연현상으로 암시하여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영화가 정신분석학적 이론이나 몇개의 상징적 소재들을 나열하는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 반면에, 로메르 감독의 본 작품은 상징주의의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심지어 이러한 면에서의 성취는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볼 수 없는 지점이다). 물론 영화 중간 중간에 우연히 발견되는 트럼프 카드와 같은 식상한 개별적 상징물도 영화의 분위기를 돋구기 위한 소재로 사용되고는 있으나, 근본적으로 이 영화는 인물이 가진 고독에 대한 섬세한 표현, 서사를 통한 우연성에 대한 정교한 묘사, 적녹 대비의 시각적 미장센, 기묘한 바이올린 선율의 절제된 청각성, 그리고 “녹색광선”이란 신비로운 자연 현상의 도입등을 통하여 상징을 만들어 나간다. 이 조화로운 총체적 묘사가 보다 진실에 가까울수 있는 상징체계를 구성하게 된 것이다.
2.좋은 영상의 사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델핀과 기차역에서 만난 남자가 녹색 광선과 우연히 조우하는 씬이다. 녹색 광선이라는 자연 현상을 이용한 상징주의적 연출을 하고 있다. 여배우의 감정이 고조되는 연기와 함께 흐르는 바이올린 선율의 음악이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수평선의 태양 씬을 처음 제시하는 도입부가 특색 있는데, 이 부분은 영화상에서 유일하게 디졸브로 장면 전환을 하고 있으며 전환의 사이에는 아주 짧게 암전된 화면이 흐른다. 이는 본 장면을 다른 장면들과 격리 시키는 심상을 줌으로써 매우 의미심장하고 중요하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여담으로,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추천 영화중 하나로 이 녹색광선을 뽑았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홍상수와 에릭 로메르의 작품간에는 분위기상의 유사점이 많이 있다. 홍상수의 데뷔작인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의 불시에 튀어나오는 의미심장한 바이올린 선율은 이 녹색광선의 오마주가 아닐까 싶다.
에릭 로메르 감독의 또다른 작품인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은 <녹색광선>에 앞서 만들어진 작품으로 두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관련 링크 참조 => https://aexresearch.com/%ec%98%81%ed%99%94-%eb%a6%ac%eb%b7%b0-%ec%97%90%eb%a6%ad-%eb%a1%9c%eb%a9%94%eb%a5%b4-%ea%b0%90%eb%8f%85-%eb%a0%88%eb%84%a4%ed%8a%b8%ec%99%80-%eb%af%b8%eb%9d%bc%eb%b2%a8%ec%9d%98-%eb%84%a4-%ea%b0%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