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문병로 교수는 2023년 9월 21일 매일경제에 기고한 <촘스키는 왜 AI를 두려워 하나>란 칼럼(해당 칼럼 링크)에서, 챗GPT에 대한 촘스키의 사고방식과 그의 전반적인 철학과 관련하여 심각한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문병로 교수의 주장이 가진 문제점을 검토하고 촘스키의 본래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짧게 살펴보겠다.
문 교수의 주장은 단순한데 그 요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촘스키는 언어학과 관련하여 선험주의자 혹은 연역론자다.
2.촘스키와 같은 선험주의자는 근본주의적인 경우가 많다.
3.챗GPT는 경험주의적인 물건이므로 촘스키는 싫어할 것이다.
문 교수의 칼럼은 여러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는 촘스키의 “챗GPT 부정론”에 대해 어떠한 논증도 없이 그저 촘스키의 주장이 당연히 잘못되었다는 전제하에 그가 왜 부정을 하는지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교수의 시각과는 달리 촘스키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에 대하여 우선 근거를 들어 반박할 필요가 있었다.
둘째, 문 교수는 인간이 어떻게 지식을 습득하는지에 대한 “지식론의 문제”와 인간이 어떻게 언어를 구사하는 지에 대한 “언어학의 문제”를 혼동하고 있다. 촘스키의 주장처럼 챗GPT가 경험적으로 지식을 습득하여 통계적으로 처리를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챗GPT의 언어능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셋째, 문 교수는 칼럼에서 장황하게 후성 유전에 대한 사례를 늘어 놓고 있는데, 이것은 촘스키의 본래 주장의 어떠한 점도 반박하지 못하며 단지 “경험주의”의 우수성만 어설프게 강조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요컨대 문 교수의 반박은 오로지 “경험주의”의 우수성을 강조한후, “경험주의가 이렇게 우수하니 선험주의자인 촘스키는 틀렸다”정도의 늬앙스만 줄뿐이다. 심지어 문 교수는 칼럼에서 “창조론은 우주의 형성에 관한 선험주의이고 진화론은 경험주의·귀납주의다.”라고 말하며 은근하게 선험주의가 창조론과 같은 비과학적인 사상이라고 단정짓고 있다. 수학은 대표적인 선험주의적이고 연역주의적인 학문인데, 이처럼 선험주의의 우수성을 찾는다면 또 얼마든지 찾을수 있는 것이다.
넷째, 애당초 문 교수가 예로 든 “후성 유전”의 사례 자체가 “경험주의”를 강조하기 위한 목적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후성 유전이든 유전자 결정론이든, “진화”의 전체 과정 자체가 말하자면 귀납적인 학습의 과정이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 문 교수는 애매하여 설득력이 떨어지는 사례를 쓸데없이 길게 말하고 있다.
다섯째, 결정적으로 위 칼럼의 핵심 주제인 “촘스키가 챗GPT에 반대하는 이유”에 대한 문병로 교수의 답 자체가 틀린 것이다. 문 교수는 촘스키에 대해 대단한 오해를 하고 있는데, 촘스키는 자신의 전공 분야인 언어학 중에서도 “언어습득 기능”에 관해서만 선천적이라고 보는 것이지, 그는 경험주의적인 연구 방법론을 채택하여 활동하는 전통적인 “과학자”라고 볼수 있다. 게다가 촘스키가 영국 경험론의 전통에 서있는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을 존경하여 그의 사진을 자신의 연구실에 수십년간 걸어놓고 있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런 그가 문 교수의 말처럼 “근본주의적인 선험주의자”일리가 없다. 솔직히 촘스키 입장에서 이런말을 듣는다면 상당히 모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자신의 유연한 사상과 완전히 정반대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 촘스키가 챗GPT에 반대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촘스키의 주장(관련 기사 링크)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챗GPT는 컴퓨터프로그래밍과 같은 기술적 분야에 일부 유용하겠지만, 철학과 같은 고등한 분야에서는 형편없는 수준이다.
2.챗GPT는 테라바이트 규모의 엄청난 데이터를 통계적으로 처리하여 간신히 근사치의 답을 내는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지만, 인간의 두뇌는 놀랄만치 적은 데이터만으로 사고가 가능한 우아하고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근본적으로 양자는 차이가 있으며 이것은 선험적인 차이에서 비롯된다.
3.진정한 지성은 도덕적이며 비판적이다. 챗GPT는 도덕에 관심이 없어 자신의 잘못된 답변에 대해 회피로 일관하며 비판능력도 없다.
세 주장 모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여기서 간단히 세번째에 대해서만 간단히 첨언하자면, 촘스키는 평소에 건강한 지성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상가다. 세번째 주장은 이같은 사상의 영향으로 인한 것 같다.
결론적으로 촘스키가 AI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은 진짜 이유는 그의 언어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믿음, 데이터 처리 효율성에 관한 시각, 그리고 지성의 역할에 대한 평소의 소신이 개입된 결과라 말할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