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혼인을 앞둔 동성 커플에 대해 “축복”을 내리는 교리선언문을 발표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대중들의 대다수는 “포용력있게 결단을 내린 교황의 깨어있음”을 찬양하는 정도의 반응인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굉장히 우스꽝스러운 일인데,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단순히 축복을 넘어서 동성 혼인을 합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일개 시민에 불과한 나의 포용력은 성스러우신 교황님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고 있는게 아닌가?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에서 공지한 교황의 교리선언문에 대한 해설문 원본이다. 볼드체 처리는 중요부분에 내가 임의로 한 것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지난 18일, 동성 커플 축복 문제와 관련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반포하신 ‘교리선언문’이 화제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에서 소외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교회 역사상 단 한번도 변한적 없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이번 ‘교리선언문’이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간단히 살펴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간청하는 믿음(Fiducia supplicans)’ 교리선언문에 대하여” [각주1]
1.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교리)과 비교해 ‘교리선언문’은 새로운 기준 또는 새로운 교리는 아니다.
2. 모든 이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축복)에는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점을 교회는 언제나 전제하고 있다. [각주2]
3. ‘가톨릭 교리에 위배되는 죄의 상태에 있는 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축복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재확인한 선언문이다. [각주3]
4. 혼인과 관련된 상황에 있어 ‘가톨릭 교회 가르침을 벗어난 상황에 있는 이들이나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의 경우, 공개적으로나 혼인을 암시하는 형태의 축복은 불가하다고 명시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각주4]
5. 왜냐하면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6. 즉 전통적인 가톨릭 교리가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적절한 상황 하에서, 혼인에 있어 통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처한 이들에 대해서도 여러 전제 조건들의 확인 후 축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제시했다는 데에 이번 선언문의 의미가 있다.
——————————–
[각주1] 교리선언문의 구성: 1. 혼인에 대한 축복 2. 다른 여러 축복들 3. ‘가톨릭 교회 가르침을 벗어난 상황에 있는 이들이나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 4. 교회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사
[각주2] 교리선언문, 28항: 이 같은 축복은 모든 이를 향하며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다.
[각주3] 교리선언문, 32항: 하느님의 은총은 자신을 의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아니라 모든 이가 그러하듯 죄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겸손되이 고백하는 이들 안에서 작용한다.
[각주4] 교리선언문, 38항: 이러한 이유로 교회 가르침을 벗어나는 상황에 있는 커플에게 ‘축복 예식’이 장려되거나 마련되어서는 안되지만, ‘간단한 축복’을 통해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고자 하는 상황에 처한 모든 이에게 교회의 위로가 허락되지 않거나 금해져서는 안된다. 사제는 자발적인 축복을 포함하는 ‘간단한 기도’를 통해 기도를 청하는 이를 위한 평화, 건강, 인내심, 대화의 마음가짐, 상호 도움을 청할 수 있으며, 동시에 하느님 뜻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빛과 힘을 청할 수 있다;
교리선언문, 39항: 어떠한 형태의 혼란이나 추문을 피하기 위해, 교회 가르침을 벗어나는 상황에 있는 커플의 요청에 의해 축복의 기도를 바치는 모든 방식에 있어, 비록 전례서가 제시하는 예식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혼인 결합을 의미하는 사회적 예식이나 그와 비슷한 예식 안에서는 결코 거행돼서는 안된다. 또한 혼인을 연상시키는 의복, 상징, 서약 등이 동반돼서도 안된다. 이 같은 기준은 동성 커플의 축복 요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위 해설문을 독자의 편의를 위해 아래와 같이 핵심을 요약해 보았다.
1.교회는 역사적으로 단한번도 모든이를 축복하지 않은적이 없었다.
2.교회는 오직 이성혼인만을 인정하며, 동성혼인은 죄이다 .
3.교회는 죄인에게도 때로는 축복을 내릴수 있다. 따라서 경우에 따라 동성커플에게도 축복을 내릴수 있는것이다.
이제 각각을 분석해보겠다. 먼저 1번은 새빨간 거짓말인데, 우리는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저지른 수많은 직간접적인 증오와 무지의 행동들을 잘 기억하고 있다. 신의 이름으로 교회가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십자군 전쟁이라던지, 마녀사냥등이 축복의 행동이었단 말인가?
2번과 3번을 종합해보면 교황은 “동성 커플 너네들은 죄인이지만 까짓것 축복은 해주마” 정도의 행동을 한것이다.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이 신랑 신부를 보고 “당신들의 결혼은 있어서는 안될 범죄이지만 나는 당신들을 축복하오”라고 인사를 건낸다면 이 하객은 무슨 소리를 듣게 될까? 아마 식장에서 욕먹고 쫒겨나지 않을까? 그런데 교황은 사실상 똑같은 말을 하고도 칭송을 받고 있다. 실로 코미디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동성혼인이 “죄이면서 동시에 축복의 대상”이라니, 죄와 축복이 어떻게 논리적으로 양립할수 있는지 도통알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교황이 하사했다는 축복은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진정한 축복이 아니고 사실상 “증오는 하지 말자” 정도의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쉽게 말해 “죄인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자” 정도의 고상한 동정심의 발로인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교황이란 직업이 가장 쉽게 존경을 받는 직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른바 “존경 수혜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먼저 유구한 역사를 통해 축적된 불필요한 교리라는 관습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성스러운 흰옷을 입고서 인자한 얼굴로 마치 대단한 시혜를 배푸듯이 교리의 일부 해석을 살짝 바꾼다. 그러면 사람들이 대단한 포용력이라며 극찬을 한다. 사실 이 사람들이 교황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포용력을 가졌음에도 그러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평범한 시민들은 저 성스러운 교황보다 훨씬 넓은 포용력과 도덕성의 씨앗인 지성을 이미 갖추고 있다. 기독교란 것은 인류가 원시상태에 머물러 있을때 임시방편으로 창안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무지와 비기독교인들을 배척하는 증오심을 내재하고 있다. 아무리 교리를 시대에 맞춰 뒤늦게 살짝 해석을 바꾼다하여도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해결될수 없는 것은 버려야하며 우리 인류는 이제 그것을 할수 있을만큼 충분히 현명해 졌다.